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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공양올리기 위해 존재한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04-18 조회수 444

우리는 공양올리기 위해 존재한다

 

혜총스님 / 감로사 주지. 실상문학상 이사장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사바세계라고 합니다. 인도말 '사바'를 번역하면 '참고 견딘다'는 감인(堪忍)이란 뜻이 있습니다. 사바세계는 이처럼 얽힌 실타래를 가만히 풀어가듯이 모든 인연을 참고 견디며 살아가야 하는 곳인데도 우리들은 그렇게 살지 못해 고뇌하고 후회하며 눈물짓게 됩니다.

 

왜 우리는 참고 견디며 살아야 하는가? 이 의문 속에는 깊은 진리가 숨어 있습니다. 내가 애지중지하는 이 육신은 과거로부터 지어온 업연의 결정체인데 잠시 인연을 따라 땅, , , 바람의 네 가지 기운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언젠가 인연이 다하면 각각의 기운으로 흩어져 돌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 허망한 육신을 참된 나인 양 여기고 내가 최고라는 아만에 빠져 눈과 귀, 코와 혀, 몸과 뜻이 시키는 대로, 좋아하는 대로 이끌려서 온갖 죄를 짓고 삽니다. 이런 죄행은 불행하게도 내가 인간의 몸을 받기 이전부터 쌓이고 쌓여왔습니다. 여기다가 인간의 몸으로 짓고 있는 죄업까지 더하게 되었으니 우리의 인생이 어찌 딱하지 않습니까?

 

내가 참고 견디며 살아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참고 견디는 인욕이야말로 더 이상 죄업을 짓지 않게 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까지 행복을 선물할 수 있는 공양의 공덕을 쌓게 합니다. 따라서 괴로움의 인연들이 시시각각 찾아오더라도 응당 내가 받아 넘겨야 할 업보인 줄 알고 즐겁게 참고, 기쁘게 견디며 극복하려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육신이 좋아하는 대로 마구 끌려가서는 안됩니다.

 

인욕을 꾸준히 하다보면 벼가 익어 고개를 숙이듯 모든 일에 겸손하는 하심(下心)과 대자비심이 생기고 세상 만물이 하나같이 나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없구나 하는 이치에 눈을 뜨게 됩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떠오르는 아침해를 보십시오. 천지만물을 향해 비치는 햇빛은 태양이 대자연을 향해 올리는 거룩한 공양입니다. 이 부지런하며 정성스런 태양의 공양행이 없다면 만물은 하루도 살지 못합니다. 태양이 대자연을 위한 공양을 위해 존재하듯이 땅도, 허공도, 물도, 심지어 매일 대하는 밥그릇에 이르기까지 삼라만상 모두가 나를 위해 공양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 보십시오.

한줌의 모래를 부처님께 공양 올린 아이가 그 공덕으로 훗날 인도를 통일한 아쇼카 대왕이 되고, 가난한 여인이 어렵게 구한 기름으로 밝힌 등불공덕으로 훗날 부처님이 되듯이 공양의 공덕은 거룩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불전에 향이나 초를 올리는 것도 거룩한 공양이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고 실천해서 훌륭한 인간이 되는 그것이 바로 부처님에 대한 진정한 공양이라 할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공양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행하는 모든 행위는 공양입니다. 공양은 지위가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에게 하는 것도,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에게 하는 것도 공양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잘 건사하는 것도 공양이요, 자식이 부모를 잘 모시는 것도 공양입니다. 직장에서 종업원이 사장에게, 사장이 종업원에게 하는 행위도 공양입니다. 학교에서 스승이 제자에게, 제자가 스승에게 행하는 모든 일도 공양입니다. 대통령이나 정치인이 국민에게, 국민이 위정자를 대하는 행위도 공양입니다. 태양이 우리를 비추며 공양 올리듯이 우리가 대자연을 잘 보호하는 것도 공양입니다.

 

우리는 나와 인연하고 있는 모든 존재를 향해 공양 올리는 존재로 살아야 합니다. 이 공양을 잘 해야 행복이 오고, 구경에는 부처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공양이야말로 나의 불성을 위한 참다운 수행이요, 시방세계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입니다. 세상의 모든 존재가 공양하기 위해 있듯이 나 또한 공양하기 위해 존재한다면 삶은 편안하고 평화로울 것입니다.

 

한 떼의 코끼리가 밀림을 가다가 그만 늪에 빠졌습니다. 모두들 살려고 필사적으로 몸부림쳤습니다. 그 중에 기어코 살아난 코끼리가 있었습니다. 그 코끼리는 늪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기 때문에 다시는 늪 가까이 가지도 않을뿐더러 빠지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밤에 켜놓은 호롱불을 보고 날아드는 불나비는 밝은 불빛이 좋아 날아왔지만 뜨거운 줄 알면서도 끝없이 날아와 죽음을 맞이합니다.

 

기억력이 좋은 코끼리는 다시는 생사를 헤매지 않지만 불나비는 곧 잊어버리니 끝없는 생사고해를 건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무수한 생을 거듭하면서 윤회의 고통을 겪어왔습니다. 우리가 만약 코끼리와 같이 무서운 과보를 잊지 않았다면 벌써 생로병사의 고통을 벗어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금방 잊어버리고 달콤한 욕망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부처님은 불망지(不忘地)의 경지를 터득한 분입니다. 수억 겁 전의 전생을 기억하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우리 불자도 한 번 겪은 과오를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자운 노스님께서 외국에 나가실 때 소납은 처음에 외화낭비라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스님께서 미래를 위해 외국에 나가 불교의 여러 문화를 접해보라는 말씀을 하셔서 그 후 인도를 여러 번 다녀왔습니다.

 

처음과 두 번째, 세 번째 인도를 갔을 때 부처님 성도지 부다가야에는 여전히 거지들이 즐비했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거지, 다리를 잃은 거지, 팔을 잃은 거지, 졸졸 따라오며 구걸하는 아이들 등등 세상의 거지는 모두 이곳에 모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소납은 그때 돈도 주고 심지어 옷까지 벗어주었습니다. 세 번째까지 그렇게 해주고는 왜 이들이 이런 과보를 받을까를 참구해보았습니다.

 

그 결과 보시하지 않고 물건을 취한 것이 혹독한 과보로 왔음을 알았습니다. 계속 얻어먹는 습관이 받을 때는 좋을지 몰라도 나쁜 과보가 된다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보시바라밀이 육바라밀의 첫 번째입니다. 그만큼 우리의 업장을 소멸하는데 중요한 보살의 덕목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불망(不忘).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걸어온 업보를 잊지 말고 그 업장을 타파하기 위해 항상 공양 올리는 보살행을 닦아야 합니다. 부처님께 공양 올리듯이 매일 일상 생활하는 가운데 모든 사람, 모든 생명들에게 공양 올리는 마음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실천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복되게 살고 성불할 수 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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