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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업을 녹인 머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10-30 조회수 5374

전생업을 녹인 머슴

 

옛날 경산 최부잣집에 을덕이란 머슴이 새로 왔습니다. 며칠 살펴보니 짐은 남보다 세 배를 지고, 몸은 두 배로 재빠르며, 일 눈까지 밝아 기특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흡족한 최부자는 들어온 지 며칠 안 된 애송이에게 사랑채 심부름까지 도맡기며 각별하게 대했습니다.

 

어느 날, 파계사 스님이 와서 새로 온 머슴의 상을 보니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큰 시주자인 최부자에게 횡액을 끼치고도 남을 업장을 지닌 위인이었습니다.

저런 업장을 지닌 위인은 언제 어디서건 불씨만 와 닿으면 터지게 되어 있는 화약고와 같소. 전생의 악업 때문에 온몸에 분심과 살생의 기운이 가득하니, 모진 중생 거두었다가 괜한 횡액 당하지 마시고 속히 내보내도록 하십시오.”

 

최부자는 덕 높은 스님의 도력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아끼는 일꾼을 내보내기가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이 그날로 당장 내보냈습니다. 뜻밖에 쫓겨난 머슴의 심정은 허탈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병든 홀어머니와 동생들을 위해 일찍부터 시작한 머슴살이였습니다. 일솜씨는 좋았지만 성을 잘 내었기 때문에 일단 싸움이 터졌다 하면 눈에 뵈는 게 없는 성질 때문에 세경 한 푼 못 받고 쫓겨난 집이 한두 곳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만은 정말 억울했습니다. 모처럼 좋은 주인을 만났기도 했지만 스스로도 분기를 잘 다스리려고 마음을 다잡은 덕분에 아직까지는 다툼질이 없던 터였습니다.

 

억울하고 분한 마음으로 다리목에 도착하니 마침 홍수 뒤끝이라 다리마저 떠내려가고 없었습니다. ‘초년 고생은 사서도 한다지만 이놈의 팔자는 어찌 이리도 박복한가.’ 하고 강기슭에 주저앉아 신세를 한탄하고 있는데 흙탕물에 잠겼다 떠올랐다, 떠내려가는 이상한 물건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살펴보니 썩은 짚단에 개미들이 새까맣게 엉겨 붙어 있었습니다. 머슴은 동병상련의 측은지심으로 그 짚단을 끌어 당겨 개미들을 모두 뭍으로 옮겨주었습니다.

 

해가 저물자 머슴은 어쩔 수 없이 최 부잣집으로 돌아가 다리 끊긴 사연을 아뢰고 하룻밤만 재워줄 것을 청하였습니다. 그런데 최부자 옆에 서있던 스님이 머슴의 손을 잡고 물었습니다.

오늘 아침 이 집을 나갈 때까지 너에겐 분명 살상의 기운이 가득했는데 지금은 전혀 그런 기운이 없다. 이는 그 사이에 네가 큰 복밭을 일구었다는 얘긴데, 그렇게 두터운 업장을 소멸시킬만한 복을 하루 낮에 짓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네.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소상히 털어놔 보게.”

 

머슴이 오늘 하루 겪은 일과 그 심사를 소상히 아뢰자 스님은 무릎을 쳤습니다.

과연 그렇구나! 짚단 하나를 까맣게 덮을 정도라면 개미가 수만 마리는 될 것인즉, 어려움에 처한 수만 생명을 구하였으니 너는 오늘 스스로 큰 작복의 터를 일구었고, 그것으로 전생의 두터운 업장이 소멸되어 남에게로 향하던 분심(忿心)과 원심(怨心)이 봄눈 녹듯 사라졌다. 이렇듯 화도 복도 내안에서 비롯되는 것이니 부디 그 복밭의 종자를 잘 갈무리하여 앞으로는 부지런히 복밭을 잘 일구시게나.”

 

머슴 을덕이는 감격하여 스님께 눈물로써 삼배를 올렸습니다. 을덕이처럼 누구에게나 물들지 않은 본심은 있습니다. 이 본심을 찾는 일이 불자의 수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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