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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짓는 불자가 됩시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11-13 조회수 5475

연화정토사포교당 18주년 법문

 

복 짓는 불자가 됩시다

혜총

/ 감로사 주지, 재단법인 대각회 이사장,

조계종총본산 성역화추진위원회 상임부위원장 겸 모연위원장

 

사람들이 누리고자 하는 복은 크게 다섯 가지(五慾樂)입니다. 먼저 재물이 풍족해서 잘 사는 것(), 그 다음은 남녀가 좋아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것(), 또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것(), 이름을 사방에 떨치는 명예(), 자고 싶을 때 마음껏 잠자는 것()입니다. 종교를 믿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누구나 복 받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이 복이 모든 사람에게 다 오지를 않으니 이게 문제입니다. 그래서 복을 달라고 신에게 매달리고 부처님께 기도드립니다. 하지만 복은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복 받을 준비가 된 사람만이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복을 달라고 하지 말고 지으라고 가르치십니다. 농부가 밭을 가는 것처럼 복을 짓고 자기가 거두는 것이다.

 

생활이 어렵다보니 서민들의 입에서는 못 살겠다는 말이 쉽게 나옵니다. ‘왜 이다지도 박복할까?’하고 시름에 잠겨 심지어 스스로 세상을 하직하는 사람들의 소식도 자주 들려옵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고맙고 감사할 일도 있습니다. 바로 부처님의 법을 만난 인연입니다.

 

내가 인간의 몸을 받지 못하고, 지옥이나 아귀, 축생의 길로 끌려갔다면 지금쯤 어느 하늘 아래에서 하소연도 한번 못하고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을 겁니다. 다행히 인간의 몸을 받았다고 해도 부처님의 법을 만나지 못해 탐진치 삼독에 빠져 산다면 그 또한 불행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참으로 무서운 일이 아닙니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원정사에 계실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부처님은 설법을 해도 들을 수 없고, 알아듣지도 못하고, 수행도 못해 열반에 들지 못하는 여덟 종류의 박복한 중생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는 지옥(地獄)에 태어난 중생이다. 그들은 여래가 세상에 나와서 설법하는 것을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한다. 그리하여 도를 닦지도 못하고 열반에 이르지도 못한다.

 

둘째는 축생(畜生)에 태어난 중생이다. 그들은 여래가 세상에 나와서 설법하는 것을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한다. 그리하여 도를 닦지도 못하고 열반에 이르지도 못한다.

 

셋째는 아귀(餓鬼)에 태어난 중생이다. 그들은 여래가 세상에 나와서 설법하는 것을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한다. 그리하여 도를 닦지도 못하고 열반에 이르지도 못한다.

 

넷째는 장수천(長壽天)에 태어난 중생이다. 그들은 여래가 세상에 나와서 설법하는 것을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한다. 그리하여 도를 닦지도 못하고 열반에 이르지도 못한다.

 

다섯째는 변방에 태어난 중생이다. 그들은 여래가 세상에 나와서 설법하는 것을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한다. 그리하여 도를 닦기는커녕 성현을 비방하고 온갖 삿된 없을 짓는다.

 

여섯째는 중앙국에 태어났어도 여섯 가지 감관이 완전하지 못하고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는 중생들이다. 그리하여 설법을 듣지도 않고 도를 닦지도 못하고 열반에 이르지도 못한다.

 

일곱째는 중앙국에 태어나고 여섯 가지 감관을 완전하게 갖추었지만 삿된 소견을 갖는 사람이다. 그는 보시의 공덕도 없고 받는 이도 없으며 선악의 갚음도 없고 금생 후생도 없다. 사문이나 바라문이 어떤 경지에 오른다는 것도 다 쓸데없는 말이다라고 주장하며 도를 닦지 않는다. 그리하여 설법을 듣지도 않고 열반에 이르지도 못한다.

 

여덟째는 중앙국에 태어나고 여섯 가지 감관을 완전하게 갖추었으며 총명하며 재주도 있고 설법을 들으면 바로 이해하고 바른 소견을 갖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그는 게을러서 여래의 설법을 듣고도 실천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도를 닦지도 않고 열반에 이르지도 못한다.

 

그러나 수행자들이여. 어떤 사람은 중앙국에 태어나서 지혜와 변재와 총명이 있는데다가 여래의 설법을 듣고 열반에 이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바른 소견을 닦으며 선악을 잘 분별하며 범행을 닦는다. 그리하여 열반에 이를 수 있다. 그러므로 그대들은 여래의 설법을 듣고 열반에 이를 수 있다고 믿고 부지런히 수행해야 한다.” 증일아함경, 팔난품

우리가 비록 온갖 호사를 누리며 살지는 못한다고 해도 부처님 법을 만나 선악을 잘 분별하는 소견을 닦아가면서 고통 속에서도 작은 행복을 누리고 사니 감사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 복은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복이 아닙니다. 삿된 법이 아닌 부처님 법을 만나 청정한 승가의 그늘아래 사는 맑은 인연만이 누릴 수 있는 복입니다. 항상 감사하면서 부지런히 노력해가면 반드시 좋은 날이 오게 되어있으니 희망을 잃지 않고 씩씩하게 살아갑시다.

 

부처님께서 어느 날 제자들에게 복 짓기를 권하시면서 그대들은 복이 없음을 두려워해야 한다. 왜냐하면 복이 없음은 괴로움의 근원으로 복이 없으면 근심과 괴로움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으며 즐거움이 없기 때문이다.”고 말씀하시고는 당신도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었을 때 악마들이 수천만억의 군사를 거느리고 방해했지만 복덕의 힘으로 악마를 항복시켰다고 하셨습니다.

 

복이 있으면 즐겁고 복이 없으면 괴롭습니다. 그러니 금생과 오는 내생이 모두 즐겁고 행복하자면 복을 지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복을 지으려는 생각은 하지 않고 복을 받으려고만 합니다. 복을 짓지 않고 복을 받으려는 마음은 공짜를 탐하는 욕심입니다. 헛된 욕심입니다. 마치 집을 지을 때 1층은 짓지 않고 23층을 지으려는 어리석은 사람과 같습니다.

 

복을 지으려면 먼저 복이 없음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복이 없으니 이렇게 괴롭구나. 복을 지어야지.’ 하는 마음이 먼저 앞서야 합니다. 복이 없으면 이 세상을 살면서도 온갖 재앙을 당합니다. 구하는 것을 구하지 못하는 재앙, 배고픔과 빈곤의 재앙, 자식이 없는 재앙,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재앙, 만나기 싫은 원수를 만나는 재앙,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해야 하는 재앙, 오래 살고 싶은데 일찍 요절하는 재앙 등 온갖 괴로움을 당합니다.

 

내가 복이 없음에 대한 두려운 마음이 생겨야 복을 지을 수 있습니다. 복이 없으면 온갖 재앙이 곧 닥친다는 생각이 내 마음에 확실히 서 있으면 복을 짓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학생이 공부를 게을리 하는 것도 공부하는 복을 짓지 않으면 앞으로 겪게 될 불행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것은 일찍이 재앙을 뼈저리게 느낀 결과입니다. 부처님께서도 수없이 복을 많이 지었기 때문에 마군을 항복받고 위없는 도를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중생과 부처님의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중생은 복이 없음을 한탄만 하지만, 부처님은 수억 겁 그 오랜 세월동안 온갖 보살행을 다하면서도 복 짓기를 마다하지 않으신 분입니다. 우리도 복 짓는 부처님과 같이 살아야 복을 받습니다.

 

복을 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복을 짓는 인연이 없었던 사람들입니다. 복이 없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순간순간의 욕락에 도취해 살았기 때문에 복 짓는 인연을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복은 어떻게 지어야 할까요?

 

천만다행으로 우리는 부처님의 정법을 만났습니다. 지구상에 수많은 중생들이 살아가지만 사람으로 태어나서 정법을 만난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여러분은 이것만 해도 사실 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 복이 헛되지 않게 할 줄 알아야 진정한 지혜로운 사람이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복을 지으며 사는 일입니다. 복 짓는 일이 무엇입니까? 바로 부처님께서도 닦으셨고 누누이 강조하셨던 육바라밀- 보살행입니다. 불자는 모름지기 육바라밀- 보살행을 생활의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아시다시피 육바라밀은 불교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보살의 실천행입니다. 생사의 고해를 건너 열반의 세계에 이르는 육바라밀은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반야바라밀의 여섯 가지입니다.

이 육바라밀을 의지하지 않고 바라는 바를 성취할 수 없고, 고난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남을 대할 때 희생과 봉사와 헌신으로 베푸는 보시(布施),

계율을 지켜 삶에 후회하는 일을 하지 않는 지계(持戒),

몸과 뜻과 입에서 일어나는 모든 악한 행동을 참고 이기며 오로지 자비를 닦는 인욕(忍辱),

바른 일을 위해서는 끈기 있게 노력하는 정진(精進),

헛된 번뇌망상을 버리고 청정하고 티없는 마음을 닦는 선정(禪定),

어리석고 어두운 마음을 밝게 하는 지혜(般若) 수행이 육바라밀입니다.

 

우리는 다행히 부처님의 그늘 아래 자비와 지혜의 법을 만났습니다. 남보다 못하다고 불평하고 낙담하기에 앞서 지금의 자기에 대해 만족할 줄 알고, 지금의 처지를 딛고 일어서야 합니다. 이렇게 보살행을 닦으며 복을 짓는 지혜로운 불자가 되어야 이생에서도 복 받고 다음 생에 극락에도 왕생하고 복을 받습니다.

 

불자여러분! 일신과 가정에 무량대복, 무량광명이 충만하시길 바랍니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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