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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길목에서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6-14 조회수 4388


    

초대하지 않아도 인생은 저 세상으로부터 찾아왔고

허락하지 않아도 이 세상으로부터 떠나갔다.

그는 찾아온 것과 마찬가지로 떠나가는 것이다.

거기에 어떠한 탄식이 있을 수 있는가.

- 자타카-


 

지금까지 엄청난 재산을 모은 사람도 많았고, 명성을 얻은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재산과 명성과 함께 그들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아시는 분은 한번 일러 보십시오. 아무도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합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홀로 태어나 홀로 죽으며, 홀로 왔다가 홀로 갑니다.

 

옛날 중국에는 황제가 죽으면 살았을 때 시중을 들던 궁녀나 내시들을 함께 무덤 속에 묻기도 했습니다만 그런다고 황제나 궁녀들이 함께 손잡고 갑니까? 아니올시다. 억지로 죽음을 당한 궁녀들이 황제를 원망하면서 어떻게 죽어서까지 시중을 들 수 있겠습니까?

 

어버이와 자식 간에, 또 아내와 남편이 아무리 끈끈한 정이 있어 서로 행복했다고 하더라도 죽음의 갈림길에서는 어쩔 수 없이 제각각 갈라서게 마련입니다. 도대체 무엇을 인생이라 해야 할까요?

 

막막한 광야에 어떤 사람이 길을 가는데 뒤에서 성난 코끼리가 사람을 잡아먹으려는 듯 쫓아옵니다. 생사를 눈앞에 두고 정신없이 달아나다가 보니 언덕 아래에 우물이 하나 보입니다. 우물 속에는등나무 넝쿨이 축 늘어져 있습니다. ‘옳구나 됐다. 이제 살았다.’ 하면서 그 사람은 넝쿨을 붙들고 우물 속으로 내려갑니다.

코끼리가 이제는 해치지 못하겠지.’하고 겨우 숨을 돌리면서 아래를 내려다보니까 우물 밑에 독룡들이 입을 쩍 벌리고 떨어지기만 기다리고 있는데, 우물의 중간 벽에는 사방에서 뱀들이 혀를 날름거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할 수 없이 등나무 넝쿨에 의지해서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두 팔은 빠질 듯이 아파옵니다. 설상가상으로 등나무 넝쿨 위에서는 흰 쥐와 검은 쥐 두 마리가 나타나 넝쿨을 싸각싸각 쏠고 있습니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형국입니다.

 

그 와중에 머리를 들어보니 등나무 위에 있는 벌집에서 달콤한 꿀물이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져 입 속으로 들어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달콤한 꿀을 받아먹는 동안 그 맛에 취해서 곧 죽을 자신의 처지도 잊은 채 황홀경에 도취합니다.

 

부처님은 우리 인생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위 이야기에서 막막한 광야는 중생이 지은 업에 따라 윤회하는 지옥 · 아귀 · 축생 · 아수라 · 인간 · 하늘의 여섯 세계, 육도(六道). 코끼리는 예고 없이 목숨을 앗아가는 살귀(殺鬼), 우물은 이 세상이고, 독룡은 지옥입니다. 또 네 마리 뱀은 우리 몸을 구성하는 네 가지 요소인 사대(四大), · · · 바람이요, 등나무는 중생의 어리석음인 무명(無明), 등넝쿨은 생명줄, 흰 쥐와 검은 쥐는 일월이 교차하는 낮과 밤이요, 꿀물은 오욕락(제물 · · 음식 · · 명예)입니다.

 

우리가 사는 인생의 모습이란 이와 같이 언제 죽을 지도 모르는 막막한 인생 속에서 그때그때 잠시잠깐 찾아오는 꿀물에 취해서 세월을 보내는 것입니다.

그런 막막한 삶을 살면서 가만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업()을 짓고 또 과보(果報)를 받습니다. 그런데 보통 업이라고 하면 소극적이고 피동적으로 팔자소관이라고 운명적으로 받아들이기 쉬운데 이는 전혀 잘못된 견해입니다.

 

운명적, 숙명적으로 우리 인생의 행복과 불행이 정해져 있다면 인생에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종교도 필요 없을 겁니다. 부처님도 하느님도 다 소용 없을 겁니다. 우리가 짓고 받는 업과 그 과보는 우리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바뀌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소위 개운(開運)이라고 해서 자신이 짓는 업에 따라 운이 열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짓는 업에 따라 팔자를 바꿀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운명을 바꿀 수도 있는 것입니다.

 

()나라 때 '마의상서(麻衣相書)'라고 관상학(觀相學) 책을 쓴 마의선인(麻衣仙人)이 있었는데 마의선인이 하루는 시골길을 걷고 있는데 나무하러 가는 머슴의 관상을 가만히 보니 곧 죽을상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의선인은 머슴이 딱하게 보여서 얼마 안 가서 죽을 것 같으니 너무 무리하게 일하지 말게.”하고 말해주고 헤어졌습니다.

 

마의선인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아는 머슴은 그 말을 듣고 낙심해서 개울가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며 탄식을 하는데 마침 개울을 따라 떠내려 오는 썩은 나무껍질 위에 수많은 개미떼가 물에 빠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것이 보였습니다. 머슴은 그 모습을 보니 꼭 자신의 처지와 같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측은한 마음에 나무껍질을 물에서 건져 개미떼들을 모두 살려주었습니다.

 

며칠 후 마의선인이 다시 그 머슴을 만나게 되었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 머슴의 얼굴에 짙게 깔려 있던 죽음의 그림자는 온데간데없고 부귀영화를 누릴 관상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마의선인은 그 젊은 머슴이 개미를 구해준 이야기를 듣고 크게 깨달아 마의상서 마지막 장에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상호불여신호 얼굴 좋은 것이 몸 건강한 것만 못하고

相好不如身好

신호불여심호 몸 건강한 것이 마음 착한 것만 못하고

身好不如心好

심호불여덕호 마음이 착한 것이 덕성이 훌륭한 것만 못하다.

心好不如德好

 

백범 김구 선생은 젊은 날 입신양명을 위해 과거 공부를 하다가 조선 말 어지럽던 시절에 매관매직하는 부정부패를 보다가 열일곱에 과거에 낙방하자 아버지는 차라리 관상이나 풍수를 공부하면 산 입에 거미줄을 치겠느냐며 아버지가 권한 마의상서를 공부하다가 깨달음을 얻어 관상불여심상觀相不如心相- 관상이 아무리 좋아도 마음 씀씀이보다는 못하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관상 공부를 접고, 마음을 닦는데 심혈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욕지전생사 전생의 일을 알고자하면

欲知前生事

금생수자시 금생에 받는 걸 보면 알 수 있을 것이요

今生受者是

욕지내생사 내생의 일을 알고자 한다면

欲知來生事

금생작자시 현생에 짓는 일을 보면 알 수 있다.

今生作者是

 

사람 얼굴은 뱃속에서 나올 때 부모가 만들어 준 것이지만 그 다음부터는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전생의 행위가 금생의 나를 만들고, 금생의 내 행위가 나의 미래를 만든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은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착한 업을 쌓아 가는데 부지런해야 합니다.

 

인생에 어려운 일이 있습니다.

사람으로 나기 어렵고, 부처님 법 만나기 어렵고, 부처님 법을 만났다 해도 좋은 스승을 만나서 깨달음을 얻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인생의 목표를 나는 깨닫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딱 정해 놓고 착한 일들을 많이 하면서 인생을 걸어가야 세세생생 후회하지 않습니다. 죽음이 없는 영원하고 멋진 인생이 됩니다.

 

성불하십시오.

나무아미타불.


감로사 주지  혜 총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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