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는 많은 생각을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이 올바른 것인가,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물음을 끌어안고 이 생각 저 생각 많은 생각을 한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생각을 한다 해도 한 생각에 이르지 못하면 다람쥐 쳇바퀴 도는 신세를 면치 못한다. 이 생각에서 저 생각으로, 다시 저 생각에서 이 생각으로 그렇게 전전할 뿐이다. 한 생각에 이르지 못하는 한, 우리는 그러한 굴레들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다.
나무 한 그루도 무수한 그림자를 짓는다. 해가 떠서 질 때까지 시시각각으로 그림자는 그 모습이 변한다. 그 무수한 그림자를 쫓아다녀서는 끝내 나무를 잡지 못한다. 우리네 살림살이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이 생각에서 저 생각으로 전전해서는 우리 인생 자체가 그림자 인생이 되고 마는 것 아닐까?
2 문제는 이 생각 저 생각이 아니라 한 생각이다. 그림자 없는 한 생각이다. 그 한 생각이 우리의 삶의 방향과 내용을 결정짓는다. 그 한 생각이 운명의 열쇠를 쥐고 있다. 이 생각 저 생각에서 한 생각으로 넘어가는 것, 그것은 질적인 비약이다. 인생역전의 도약이다.
본래 공부라는 것이 그런 것 아닐까? 이 생각을 치고 저 생각을 치고, 마침내 한 생각에 이르는 것, 허영과 허위의식과 허구적 가치들, 그러한 그림자들을 걷어내고 자신의 존재적 가치, 삶의 가치를 회복하는 것, 인생공부라는 것이 그런 것 아닐까? 그러나 말이 쉬워서 한 생각이지, 한 생각에 이른다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다. 인간 내면의 그림자는 쉽게 드러나지 않으며 천가지 만가지로 변화한다. 그래서 그 짙은 그림자를 넘어서 더 이상 요동치지 않고 부침하지 않을 한 생각에 이른다는 것, 삶의 뿌리를 내린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2. <그림자 없는 나무>(유상지음/도서출판 방하)는 우리를 한 생각으로 이끌어 주는 책이다. 웰빙(well-being)을 말하는 시절, 그러나 정작 삶의 가치는 실종되고 인간의 가치가 시장가치에 의해 여지없이 능멸당하는 시절, 무수히 너울거리는 그림자에 갇혀 있는 우리들에게 ꡐ그림자 없는 나무ꡑ는 새로운 삶의 소식을 전한다.
필자는 이 책에 대해 달리 해설하거나 서평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또한 해설을 가하고 서평을 한다는 것 자체가 또 다른 그림자를 만들까 두렵기도 하고 민망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이 책에 인용된 옛날 조사의 게송 하나가 우리의 머리를 친다.
ꡒ달 아래 나무 그림자 자취 묘연하고 (月下樹無影) 한낮 정오에 삼경을 친다(日午打三更).ꡓ 이 무슨 추상같은 호령일까? -------------------------------- * 이글은 문화일보(2004/08/27)에 실린 배영순 교수의 칼럼 < 허구의 그림자 걷어내고 삶의 뿌리 내리는 길>을 옮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