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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운 대율사스님 행장
작성자 감로사 작성일 2006-03-25 조회수 1099
자운당 성우 대율사 스님은

1911년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노동리에서 태어났으며
1917년 진부면 서당에서 동몽선습,사서삼경 등 유서를 수학하였다.

1926년 16세의 나이에 정초기도를 위해 절에 가시는 어머니를 따라 오대산 상원사에 가서 혜운경윤스님으로부터 "백년삼만육천일(百年三萬六千日)이 불급승가반일한(不及僧家半日閒)이라"(세속의 100년 36,000일보다, 출가의 반나절이 더 낫다)는 순치황제 출가시를 듣고 발심하여 마침내

1927년 17세의 나이로 출가를 결심하고 해인사로 달려가 팔만대장경판전에서 일만배를 올리고 혜운스님을 은사로 남천한규화상을 계사로 대적광전에서 사미계를 수지하고 서원게를 읊었고, 같은 해 범어사 금강계단에서 보살계를 받았다.

1929년 해인사 강원에서 사교과를 수료하고 범어사 선원에서 수선안거를 시작해 그 해 순천 선암사 선원에서 동안거를 하였다.

1932년 범어사강원에서 대교과를 졸업하고, 해인사 선원에서 하안거를, 표훈사에서 동안거를 하였으며 1933년에 울진 불영사에서 하안거 및 동안거를 하였다.

1934년 24세에 범어사에서 경념율사로부터 비구계를 수지하고 율장연구 시작하여 5부대율을 날마다 서사 지송근행하였으며

1935년 범어사 선원에서 하안거를 마치고, 3년 동안 울진 불영사에서 장좌불와로 결사하였으며 1937년 문경 김룡사와 양산 통도사 선원에서 하안거와 동안거를, 1938년 울산 학성선원에서 하안거를 하였다.

1938년 도봉산 망월사에서 용성 대선사로부터 西來密旨를 擧揚한 다음 '靑山常運步하고 白雲永不動이로다 人踏水底過한데 水不着衣裳'이라는 悟道頌을 읊었다. 龍城宗師는 이를 보고 그 경지를 인증하여 곧 입실건당을 허락하고 '庭前栢樹子가 儼然冠山林이로다 身帶紺靑色하고 葉覆須彌山'이라는 傳法偈와 함께 衣鉢을 전해주었다.

1939년 일제의 식민수탈로부터 조국해방과 민족정기를 되살리고 불교의 빛나는 전통을 중흥시키려는 대원을 세우고 오대산 중대 적멸보궁에서 날마다 20시간씩 백일 용맹정근으로 문수기도를 奉行하던 중, 99일째 되는 날에 황홀한 속에서 푸른 빛 사자를 타고 나타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心地戒法門을 통달하였으니, 계율을 弘通하여 모든 인연을 구족하고 대법당을 건립하여 七佛法戒를 선양하며 僧綱의 확립과 승풍을 진작하여 천하사원에 福基命位를 확립하고 戒海가 澄淸하여 속태가 없어지며 佛日이 長明하고 법륜이 상전하기를 발원하였다. 이를 계기로 계률로써 法輪常轉의 서원을 세우시고 불조혜명의 기틀을 바로 잡았다.

1940년 이후 10여 년간 제방선원에서 정진하였으니, 北으로는 금강산 마하연과 南으로는 학성선원,불영사,김용사,통도사,백양사 등 선원에서 정진하였다. 서울 대각사에 주석하면서 당시 희귀한 율장을 구할 수 없어 2년여에 걸쳐 삼복 염천에도 두터운 장삼을 입고 날마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卍續藏經에 실려있는 五部律藏과 그 註疏를 모두 筆寫하여 律藏을 깊이 연구하였다.

1948년 37세 때 처음으로 문경 봉암사에서 결사하면서 보살계 수계법회를 가졌다.

1949년 계율 홍포의 원력으로 比丘戒本 1만부, 比丘尼戒本 1만부, 沙彌律儀 5천부, 沙彌尼律儀 5천부, 梵網經 1만부 등 많은 律典을 출간 분포하였으며,

1951년 6.25 한국전쟁으로 인해 엄청난 재난에 처한 재가불자의 수행과 교화를 위해서 부산 감로사를 창건하여 국난퇴치와 자성성불의 지름길로써 통도사와 감로사에 천화계단 보살계 수계산림과 삼천불 삼천배 참회기도 법회 개설하였다.

1955년 교단정화이후 초대 해인사 주지에 추대되었으며

1956년 합천 해인사 금강계단 전계화상에 추대된 후 1981년 종단 단일계단이 형성될 때까지 약 30여년 동안 전국 각 사찰에서 시행한 계단에서 스님으로부터 수계한 비구가 1650명, 비구니가 1536명, 그리고 사미 사미니 보살계 식차마나 우바새 우바이 팔관재계 등을 받은 수계제자가 도합 십만여 명에 달한다.

1956년 재단법인 해인학원 이사장에, 1957년 조계종 경상남도 종무원장에 선출되었다.

1958년 조계종 감찰원장 1967년에는 범어사 주지를 지내시고

1957년 이후로는 계정일치 수행을 제창하고 경전과 율전의 한글 번역에 매진하여 무량수경,아미타경,십육관경, 약사경,자비도량참법 등 21종에 이르는 한글본을 출간 유포하시었으며, 휴대하기 간편한 문고판의 출판에도 심혈을 기울여 佛說佛名經, 佛頂尊勝陀羅尼經, 圓覺經 普眼菩薩章, 普賢行願品, 十六大阿羅漢禮讚, 三時繫念佛事, 淨土禮敬, 淨土法要 등을 간행하여 언제 어디서든 독경하고 예참할 수 있도록 유통불사를 행하시었으며,『彌陀禮讚』『淨土儀範』『諸經精華』등 9만여 부를 간행,유포했다.

  스님은 감로사에 주석하면서 주야로 각각 三時繫念佛事로 예참하며 六時念佛을 봉행하였다. 一日 30만독씩 아미타불종자진언을 염불하였고, 또한 오후 4시 아귀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헌식 외에는 하루 한 끼니만의 日中食을 공양하면서도 삼천배의 정진을 늦추지 않으셨다.

1960년 스리랑카에서 개최한 세계불교승가연합회에 한국대표로 참석하였고
1974년 인도 뉴델리에서 개최한 세계평화촉진회의에 한국대표로 참가했다.

1976년 조계종 원로에 추대되고, 이어 총무원장에 취임하였으며 1977년 재단법인 대각회 이사장에 취임하였으며 이듬해 조계종 대종사법계를 품수하였다.

1981년 종단 단일계단전계화상에 추대되고
1987년 동국역경원장에 이어 재단법인 동국역경사업진흥회 이사장에 취임하였다.

1992년 계유년 음력 1월 4일 감로사에서 '진성원명 본무생멸 목마야명 서방일출(眞性圓明 本無生滅 木馬夜鳴 西方日出)- 참된 마음은 둥글고 밝아서 본래 생과 사가 없다. 목마가 밤에 우니 서쪽에서 해가 뜨더라.'라는 임종게를 쓰신 다음 서쪽을 향하여 합장하고 단정히 앉아 아미타불의 명호를 칭명하면서 조용히 입적하시니 향기가 진동하고 묘음이 청아하였으며 염불소리와 함께 입으로부터 오색광명이 서쪽하늘을 가득 메웠다. 세수 82세, 법랍66년이었다. 7일째인 2월 13일 해인사 연화대에서 대한불교조계종 원로장으로 거행하였다. 다비후 은행크기의 사리 19과와 녹두크기의 사리 5천여 수가 출현하였으나 생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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