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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성찰과 사회봉사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5-09-29 조회수 2069
자기성찰과 사회봉사

혜총 스님 / 용호종합사회복지관 관장



1. 인생의 실체

사람들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신기루요, 요지경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평소 자식 복이 많다고 느끼는 사람은 자식자랑을 많이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마치 자신의 노후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듯 '자식이 있으니까 내가 늙어도 잘 봉양하겠지. 내팽개치지는 않겠지. 죽고 나면 제사는 잘 지내주겠지.'하는 생각을 가집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는 곧 알게 됩니다. 세상일이 우리 마음대로 되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식이 성장하면 반드시 부모와 자식 간에는 틈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말다툼도 하고, 별거하여 이름뿐인 부모와 자식이 됩니다. 요즈음 세상에는 심지어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폭행하거나 살해하는 경우도 더러 보지 않습니까? 아무리 내게 훌륭한 자식이 있다고 말해봤자 세상은 뜻대로 되지 않는 법입니다. 자식에게 희망을 걸면 걸수록 실망과 후회의 상처는 더 깊게 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재산이 많다고 자랑을 합니다. 집도 몇 채나 있고, 땅도 있고, 비싼 자동차에 골프회원권도, 증권도, 현금도 있다. 이것만 있으면 죽을 때까지 아무 문제없이 떵떵거리며 살 수 있다. 자식이 망나니처럼 자라도, 세상이 아무리 자기를 욕해도 이것만 있으면 해결되지 않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자식과 마찬가지로 내 뜻대로 되어주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재산이란 자기 혼자의 것이 아니라 다섯 사람 공동의 것이다. 다섯 사람이란 바람, 물, 불, 도적, 임금을 말한다.'천재지변의 풍수해, 화재, 도적, 그리고 정치권력의 변동 등에 의한 사회적 변화요인에 의해 항상 위험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 재산이란 것입니다. 그런데도 재산이 나의 절대적인 힘처럼 어리석음에 빠져 있다가 나중에 배신이나 사기를 당해 땅을 치고 통곡한들 때는 늦습니다.
그렇다면 무얼 믿고 살아갑니까?
결국엔 자기 몸밖에 남는 것이 없습니다. 이 몸 하나면 무엇을 해서라도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몸이라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까? 이가 시리고 아파도 어찌할 수 없고, 흰머리가 나고 얼굴에 주름살이 하나 둘 늘어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과음하지 말라고, 잠을 줄이고 공부하라고 그렇게 애원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배고프지 않아도 눈과 코가 맛있는 음식을 끌어당기고, 남편이나 아내가 있는데도 잘 생기고 예쁜 사람에게 넋을 빼앗기니 내 몸이 과연 내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불교에서는 <자기>나 <나>, <내 것>이란 실체는 없습니다. 단지 이론적인 언어로 받아들일 뿐입니다.
옛날에 나가세나라는 스님이 미린다 왕에게 '수레란 무엇인가?'하고 질문을 던집니다. '수레란 바퀴를 말하는가, 심봉(心棒)을 말하는가, 축(軸)을 말하는가?'하고 물었습니다. 그것은 수레의 일부분이라고 왕이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수레는 어디에 있는가?'하고 되물었습니다. 왕은 대답을 못하고 바퀴와 심봉과 그 전부가 모여서 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자기>도 이와 마찬가집니다. 귀, 코, 입, 심장, 살갗, 수분, 단백질, 바람, 등등이 모여서 된 것이 <나>라는 모양을 이루었을 뿐 엄격히 말해 <내 것>이란 하나도 없습니다. 이와 같이 <내 것>이란 본체가 없는데 하물며 <내 자식>, <내 재산>이 있을 리 만무합니다.
그럼 이 몸은, 매일 내 것이라고 쓰다듬고 애지중지하는 이 몸은 무엇입니까? 이 몸은 인연따라 우주자연에서 잠시 빌린 것, 얻은 것에 불과합니다. 그런 이 몸을 내 것이라고 함부로 망령되게 사용해서는 안 되는 법입니다. 내 것이 아니라 우리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나의 몸도 우리의 몸이요, 나의 자식도 우리의 자식이요, 나의 재산도 우리의 재산인 줄을 바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내 것이란 이기주의가 무너지면 나와 남이 하나요, 자기의 이익이 곧 다른 사람도 이익 되게 하는 자타일여(自他一如), 자리이타(自利利他)의 공평하고 무사한 자리에 서게 됩니다.


2. 자각하는 인간

사람을 만물의 영장(靈長)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우리 사람들이 짐승들과는 다른 신령스럽고 묘한 힘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사람들이 지닌 신령스럽고 묘한 힘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사는 생활공간만 보더라도 인간은 참으로 대단한 문명을 창출하고 있습니다. 고층아파트나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교각, 달리는 자동차, 비행기 등등 인간의 힘은 실로 신령스럽고도 묘합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에게는 다른 짐승과는 비교할 수 없는 또 다른 능력이 있습니다. 바로 반추(反芻)하는 능력입니다. 지난 일을 다시 생각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이미 입으로 말하고, 가슴으로 생각하고, 몸으로 행동하며 지은 일상의 편린들을 다시 되돌아보며 반성하고 점검하게 하는 이 능력이야말로 인간을 더욱 번영하게 하고, 상승된 삶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인간의 가치나 인간의 조건은 사람이 자신의 삶을 얼마나 자주 돌아보고 자각하면서 살아가느냐 하는 데 달려있습니다. 진실로 인간다운 사람, 인간적인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우리들 마음속에서 꿈틀거리는 부정적이고 정의롭지 못한 마음을 항복 받아야 합니다. 자기 외의 남을 인정하지 못하는 이기적인 마음, 자기의 이익을 위해 남이야 죽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마음, 남의 생각은 모두 그르고 자기 생각만 옳다고 하는 독선, 안과 밖이 다른 위선, 사회적인 약자를 짓누르고 아프게 해서라도 자기의 이익과 명예를 구하려는 마음들이야 말로 우리가 이겨내야 할 무익한 마음들입니다.
이런 마음들이 우리들 심연에서 보석처럼 빛나고 있는 양심을 이기지 못하도록 성찰의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합니다. 인간다운 사람은 자기 심연의 양심이란 보석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말이나 행동, 생각을 자주 돌아보고 잘못된 길에 접어들지 않도록 자제합니다. <내 것>에 대한 바른 견해를 가진 사람은 모든 일을 내 일처럼 합니다. 나와 남의 경계를 허물고 하나로 보기 때문에 시비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항상 즐겁게 일하고 나보다 남의 행복 속에서 더 큰 즐거움을 찾습니다.
인간의 역사 속에서 양지의 역사는 결국 이런 양심을 지닌 사람들이 펼쳐갑니다. 양심을 저버린 채 세속적인 욕망을 좇아가는 사람들의 역사는 그 삶이 아무리 드라마틱하더라도 슬픈 음지의 역사로 기록될 뿐입니다.


3. 진정한 행복의 길

인생의 행복을 내 것에서 찾는 사람만큼 어리석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내 것에 집착해 불행에서 벗어날 줄을 모릅니다. 지금 눈앞의 욕망을 충족하는 데만 급급해 살아가다보면 머지않은 미래에 인생의 허무를 맛보게 됩니다. 인생의 진정한 행복은 결코 내 것에서 찾아지지 않습니다.
삶의 진정한 행복은 내 것이 아니라 우리 것에서 찾아집니다. 함께 나누고 서로를 위하는 마음에서 행복은 꽃 피게 됩니다. 우리 인생의 허무한 실체를 명확히 알고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여 진정한 인생의 맛과 멋을 향유하려면 우리 속에서 더불어 사는 기쁨을 찾아야 합니다.
봉사는 더불어 살 수밖에 없는 우리 인간사회의 지극히 당연한 삶의 도리입니다. 그런데도 이기주의에 물든 사람들은 봉사의 삶을 도외시합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이 곧 맞이하게 될 늙음과 죽음의 시점에 이르러 말할 수 없는 고독과 공포에 시달리게 될 것입니다.
더불어 사는 사람은 나의 존재를 가장 낮은 곳에 두고 이웃에게 눈을 돌려 삶의 기쁨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봉사의 기쁨은 내가 일방적으로 주는 기쁨이 아니라, 봉사를 받는 사람의 기쁨에 의해 내가 돌려받는 숭고한 기쁨입니다. 따라서 봉사는 위선적인 겉치레로 행할 수 없습니다.
봉사는 자기 혼자서 즐거워하거나 자기 혼자 맛있는 것을 먹지 말고 나누자는 인간다움의 평범하고 보편적인 생각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단순히 나누고 싶다는 나의 양심의 소리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런 순수한 마음이 그대로 전달 될 때 봉사는 또 다른 사람의 잠자는 양심을 일깨워 이웃과 사회로 널리 퍼져나가게 됩니다.
봉사는 인간 내면의 순수를 전달하는 사회의 정의로운 전달자입니다. 자신의 어리석음도 모르고 참다운 인생의 길을 망각하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인생의 빛과 같습니다. 우리는 봉사를 통해 사회를 밝고 활기차게 가꾸어 갈 수 있습니다. 메마르고 상실되어가는 우리들의 이웃과 이웃 사이에 벽을 허물고 인간의 끈을 이어주며 물질에 찌든 삶의 가치를 정신의 가치로 복귀시켜 줍니다.
우리들은 알게 모르게 억겁의 세월 이전부터 숱한 인연들로부터 은혜를 입고 살아왔습니다. 은혜는 입기는 쉬워도 갚기는 어렵습니다. 나를 살려 주고 생명을 지탱해주고 삶의 기쁨을 맛보게 해 준 뭇 인연들에게 은혜를 돌려주는 일이 남을 위하고, 나아가 나를 기쁘게 하는 봉사에 있음을 자각해 다함께 봉사에 나서야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뭔가 작은 일이라도 나누겠다는 작지만 순수한 마음이 절실합니다. 늘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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