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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스승, 물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01-15 조회수 3821

실상문학 2019년 겨울호(통권90)

 

나의 스승,

 

혜총스님/ 실상문학상 이사장, 감로사 주지

 

 

울퉁불퉁한 계곡과 협곡 속에서 시냇물과 폭포는

큰 소리를 내지만, 거대한 강은 조용히 흐른다.

빈병은 소리가 요란하지만,

꽉 찬 병은 마구 흔들어도 소리를 내지 않는다.

바보는 덜그럭거리는 냄비와 같고,

현자는 고요하고 깊은 연못과 같다. <숫타니파타>

 

우리가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물. 단 하루도 마시지 않고는 살 수 없는 물. 늘 곁에서 쉽게 음용하니까 이 물의 소중함을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가 겨울에 가뭄이라도 닥치면 그때서야 금방 죽겠다고 아우성입니다. 또 여름에 홍수를 만나면 물이 원수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물의 본성에서 우리는 삶의 소중한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도 경전을 통해 물에 비유한 말씀을 많이 하셨지만 소납도 이 물에서 큰 가르침을 배웠습니다.

 

중국의 사상가 왕양명은 일찍이 '수오훈(水五訓)'이라고 해서 물이 주는 다섯 가지 가르침을 통해 우리가 물에서 어떤 것을 배워야 하는가를 일깨워주었습니다.

 

첫째. 항상 자기의 진로를 찾아 멈추는 일이 없다. [繼續精進]

 

물은 항상 자기가 나아갈 길을 찾아 멈추는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앞에 바위가 놓여 있든 높은 언덕이 가로막혀 있든 가다가 흐름을 멈추는 물줄기는 없습니다. 앞에 무언가가 물길을 막고 있으면 그 틈새를 반드시 찾아내어 그 사이를 찾아 흐르거나,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둘레를 돌아서라도 아래로 흘러내려갑니다. 바다로 가는 물줄기, 강줄기의 그 수없는 곡선들은 어떻게든 자기의 길을 멈출 수 없었던 물의 몸짓과 걸어온 흔적이기도 합니다.

부처님께서도 정진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대체로 게으름이란 것은 모든 행의 폐단인 것이다. 가정에 있으면서 게으르면 옷과 밥을 공급하지 못하고 산업産業이 오르지 않으며, 출가하여서 게으르면 능히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느니라. 일체 모든 일들이 모두 정진精進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나니, 집에 있으면서 정진하면 의식이 풍요하고 사업이 더 넓어져서 원근遠近이 칭찬하고 감탄하며, 출가하여서 정진하면 행하는 도가 다 이루어지느니라.

삼십칠품과 모든 선의 삼매와 도법道法의 고장庫藏을 구족하고 생사의 흐름을 끊어 열반의 언덕에 이르러서 함이 없는 안락을 얻고자 할진대 마땅히 부지런히 정진할 것이니, 부지런히 닦는 것이 근본이 되느니라.”보살본행경

또한 물은 아래로, 아래로 길을 찾아 멈추지 않습니다. 위로 올려다 볼 줄만 알았지 아래를 살피지 않는 현대인들의 병통을 물에서 한번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아래에서 길을 찾는 겸허한 사람이야말로 따뜻한 현자賢者의 모습이라 할 것입니다.

 

둘째. 스스로 움직여 다른 것을 움직인다. [自力他動]

 

물은 스스로 움직여서 다른 것을 움직이는 재주가 있습니다. 물은 생명체로서 언제나 살아 움직이며 흘러갑니다. 고인 물은 썩지만 흐르는 물은 언제나 생명력이 숨 쉽니다. 그래서 그 속에 살아 있는 것들을 키웁니다. 사람이나 동물은 물론 물가의 온갖 풀과 나무와 생명체들을 살아 움직이게 합니다. 스스로 살아 움직여 다른 것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이 힘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태고 이래로 지구상의 수십억 생명들의 젓줄이요, 원초적인 힘입니다. 스스로 타올라 모든 것을 태워 죽게 만드는 것이 불이라면 물은 끊임없는 생명의 탄생, 그 자체입니다.

스스로 움직이는 역동성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입니다. 하늘보다 높은 자유가 없이는 살아도 살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보살이 스스로의 서원력에 의해서 행하는 보살행을 통해 무량한 중생을 구제하듯이 그 보살행이 바로 대자유의 시현입니다. 스스로 움직여 다른 것을 움직이는 물은 보살행을 보여줍니다.

 

셋째. 장애를 만나면 그 세력을 몇 배로 한다. [障碍突破]

 

물은 장애를 만나면 그 세력을 몇 배로 키웁니다. 물의 힘을 인위적으로 막으려 해서는 안 됩니다. 인간들이 물을 다스리고자 제방을 쌓아 저수지나 댐을 만들고, 성난 파도를 막는 방파제를 건설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물의 힘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높이 220미터의 거대한 미국의 후버댐도 물의 수위가 높아지기 시작하면 아래로 물을 흘려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이 넘치도록 그냥 내버려두면 댐은 터져버립니다.

우리들의 삶 또한 그렇습니다. 억지로 막아서는 안 됩니다. 흘러가게 두어야 합니다. 가는 인연 붙잡지 않고, 오는 인연 막지 않아야 합니다. 위정자가 국민의 소리에 귀기우리지 않고 일방통행식의 정치를 하면 한 사람, 한 사람의 성냄이 모여 만백성의 원성이 되어서 마침내 성난 물처럼 터져버립니다.

 

넷째. 스스로 맑아지려 하고, 다른 것의 더러움을 씻고[自靜他靜], 맑고 더러움을 가리지 않고 받아들인다. [淸濁包容]

 

물은 스스로 맑아지려고 하면서 다른 것의 더러움을 씻어줍니다. 또 맑고 더러움을 가리지 않고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상에 이끌려 내편이다, 적이다.’ 해서 편을 가르고 싸웁니다. 정의로움의 가치보다 이익추구에만 몰두합니다. 자기의 더러움은 보지 못하고 남의 허물만 손가락질합니다. 만약 사람들이 이런 물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배운다면 용서하고 화합하는 아름다운 사회가 될 것입니다.

참다운 가르침은 진속불이眞俗不二에 있으니 부처 속에 중생이 있고, 중생 속에 부처가 있는 것입니다. 차별상을 여읜 물의 본성을 닮을 수만 있다면 깨달음의 경지에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더러움마저도 받아들여 맑게 만드는 물이야말로 진정한 큰 스승입니다.

 

다섯째. 한없이 넓은 대양을 가득 채우고, 비가 되고, 구름이 되고, 얼어서 영롱한 얼음이 되는 등 변화무쌍하지만[變化無雙] 그 본래 성품은 변하지 않는다. [不變自存]

 

물은 넓은 바다를 채우고, 다시 증발돼 하늘로 올라가 비가 되고 구름이 되고, 또 우박이 되어 떨어지기도 하지만, 그 본래 성품은 변하지 않습니다. 마치 진리의 당체가 허공과 같은 모습이듯 물도 또한 본성은 언제나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허공같은 본래 성품은 잊고 눈앞의 지위나 소유한 재산의 크기에 따라 금방 달라집니다. 사람 자체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가난했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큰 부자가 되면 가난했던 시절을 잊고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하대합니다. 높은 자리에 오르려고 굽실거리다가도 그 자리에 오르면 나 몰라라 얼굴을 바꿉니다.

비가 되든 얼음이 되든 본래의 자기 성질을 잃지 않는 물에서 나의 참 모습을 배웁니다. 어디에 가서 어떤 모양을 하고 있든 자기의 평상심을 잃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참 사람일 것입니다.

 

물은 그릇을 탓하지 않고 항상 그릇의 모양에 자기를 맞춥니다. 그릇이 크건 작건, 사각형이건, 원형이건, 물은 자기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남을 살도록 큰 이익을 주면서도 항상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은 소납의 큰 스승입니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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