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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와 지계, 그리고 염불하라."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5-10-18 조회수 2444
불교TV법문(불기 2549년 10월 9일)


불자 여러분의 가정에 아미타부처님의 광명이 늘 함께해서 자비와 지혜가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오늘 불교 텔레비전과의 인연으로 이렇게 전국의 여러 불자님을 만나뵙게 되어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이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오늘 소납이 해드릴 말씀은 불교의 수행에 관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길을 떠날 때 목적지가 없으면 헤매게 되듯이 목적지가 분명해야 발걸음도 당당하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이 불교를 믿는 데에도 목적이 뚜렷해야 하고, 절에 올 때도 목적이 뚜렷해야 합니다.

불교를 믿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보통 해탈이라 하기도 하고, 열반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해탈이나 열반이라고 하면 입으로는 그렇게 이야기하지만 남의 일 같아서 스님들이나 갈 곳이지 도저히 내가 도달할 수 없는 곳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 아무 부족함이 없이 행복에 겨워 잘 사는 사람들은 해탈이 필요있나 여기가 극락인데 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구중궁궐에 살고 있다고 그 달콤함에 빠져 윤회의 실상을 잊으면 큰일 납니다. 그 영원할 것 같은 행복마져도 다 무상한 허상임을 바로 보아야 합니다.

아무리 생전에 호의호식하며 좋은 집에서 여한없이 살았다하더라도 죽음의 고통은 피할 수 없고, 육도윤회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스님들의 법문을 자주 듣고, 깊이 생각해서, 바로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불교를 믿는 진정한 목적은 이 사바세계에 다시는 태어나지 말자는 데 있습니다. 그래도 나는 사바세계가 좋아 다시 태어나도 이 사바에 나겠다고 하는 사람은 죄송하지만 이왕이면 무시로 고통 받는 슬픈 중생으로 올 것이 아니라 보살이 되어서 나타나겠다는 원을 세우십시오. 사바세계의 중생들은 전생부터 지어온 업장의 힘에 이끌려 태어납니다. 그러니 이 업장을 없애면 다시는 괴로운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불자 여러분! 여러분이나 소납이나 마찬가집니다. 우리는 모두 오랜 세월 부모님의 태중에서 나오기 이전부터 쌓아온 업장의 결과로 이 몸을 받은 줄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불자가 되면 무엇보다 먼저 내가 이런 업장 덩어리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모르면 자신을 제도하기 힘듭니다.

이 업장에 의해 지금은 그래도 인간의 몸을 받았지만 이 인간의 몸을 받았을 때 자기를 잘 제도하지 못하면 개나 소, 뱀 등 짐승으로 태어나기도 하고 지옥에 떨어져 셀 수도 없는 세월동안 고통을 받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또 다행히 불법을 만나 복을 짓고 업장을 벗어서 극락세계에 나서 다시는 윤회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불자 여러분! 어떻게 하시렵니까? 가만히 자신을 한 번 돌아보십시오. 다시 또 윤회의 고통을 받으시겠습니까? 아니면 이미 받기 어려운 인간의 몸을 받았고 , 또 부처님의 법을 만난 이 때 내 업장덩어리 이 몸을 반드시 제도해서 윤회하지 않는 도리를 찾겠습니까? 여러분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더라도 그 부귀영화가 한 순간의 뜬 구름인 줄을 알고 다시는 윤회하지 않으려고 할 것입니다.

윤회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은 업장덩어리라는 나의 실체를 온 몸으로 느끼는 일입니다. 그것을 알았으면 현명한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지어온 업장을 벗어야 하고 다시는 업장을 짓지 않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바로 그 도리가 참회와 지계의 수행입니다.
참회수행은 전생으로부터 오랜 세월 동안 지어온 업장을 벗겨내는 대작불사입니다. 또한 삼귀의계나 오계, 보살계 등을 받아 지니는 지계수행은 앞으로 더 이상 업장을 짓지 않으려는 대작불사입니다. 그러니 불교에 많은 수행문이 있지만 한결같이 이 두 수행을 본바탕으로 하지 않고는 세속적인 행복이든, 수승한 깨달음의 자리이든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전국의 많은 절에서 참회기도법회와 보살계 수계산림을 봉행하고 있습니다. 불자라면 누구나 인연 따라 참회의 정진과 지계생활을 꾸준히 지어가시기 바랍니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꾸준히 참회하고 계율을 지키다 보면 육신과 정신이 청정해지고 하는 일마다 슬슬 풀려나가게 됩니다.

그 첫 번째 광명의 길이 참회수행입니다. 누대의 과거로부터 지은 업장을 녹이기 위해 참회수행을 합니다. 참회는 내자신이 내 스스로에게 허물을 뉘우치고 부끄러워 하는 것이며 또한 나의 허물을 부처님전에 숨김없이 드러내 다시는 짓지 않고자 닦는 것입니다.

소납은 열 살의 어린 나이로 통도사에서 출가인연을 맺었습니다. 그때 열반하신 자운대율사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우선 법당에 가서 삼천배 참회를 해라." 하시는 거에요. 그런데 어린 마음에 그 말씀이 이해가 안되었습니다. 그래서 스님께 " 스님 아무 죄도 짓지 않았는데 참회는 뭣하러 합니까?" 그랬거든요. 그러자 스님께서 " 네가 크면 다 알게 된다. 너는 아무 소리말고 무조건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 하셨습니다.

무슨 연고로 한두 번도 아니고 삼천 번이나 절을 하면서 죄도 짓지 않았는데 참회해야하는지 알 수 없었으나 그렇게 삼천배를 마치고 스님이 되었습니다. 스님이 된 이후에도 오랫동안 그 연유가 의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자 큰스님의 그 뜻을 차츰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무 죄도 짓지 않았다고 자신있게 말했지만 어릴 때 잠자리 꽁지를 잘라내고 풀대를 꽂아서 날리며 좋아했던 일도 있고, 개구리를 잡아서 못할 짓을 한 일 등 죄가 죄인 줄을 모르고 저질렀던 그 무수한 일들이 나의 업장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철 모르고 저지른 일이지만 꽁지에 풀대를 꽂고 날아가던 잠자리는 몸뚱아리가 잘려 나가는 아픔을 느끼면서 얼마나 나를 원망했겠습니까? 여러분이 그 잠자리라고 눈을 감고 한번 느껴보십시오. 끔찍하지 않습니까? 그것을 보고 좋아라고 손뼉을 치고 웃었으니 어리석음이 그렇게도 무서운 업장인 것입니다. 지금 이렇게 이런 법문을 드리는 것도 그 잠자리에게 참회의 공양을 올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과거의 업장을 참회함과 동시에 지금 이 순간순간마다 짓게되는 업장도 다시는 짓지말아야 하겠기에 계율이란 갑옷으로 이 몸을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육신과, 입과 마음을 통해 수시로 나쁜 유혹에 빠져들려고 합니다. 이 몸을 굳게 지키는 갑옷이 바로 계율을 받아 지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실 무렵 제자가 "부처님께서 안 계시면 어디에 의지해야 합니까?" 하고 여쭈니 "계율을 스승으로 삼아서 살아라. 그러면 의지처가 될 것이다." 하셨습니다.

계를 받아 지키는 것은 깨달음을 위해 지혜와 자비를 실현해 나가는 실천덕목입니다.계를 수지한다는 것은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탐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삼독심을 자제하는 연장을 쓰는 일입니다. 삼독심을 제거하고 몸과 입과 마음이 청정해져야 비로소 참선이나 염불삼매에 들어가서 과녘을 돌파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쉬운 듯 보이지만 업장을 소멸하기가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부처님전에서 다시는 죄업을 짓지 않겠노라고 참회하고 계를 받아지니지만 탐내고, 성내며, 어리석은 세 가지 마음의 적이 수시로 나를 가만히 두지를 않습니다.

그러니 이 삼독심으로부터 정신을 빼앗기지 않고 살기위해서 일하면서도 쉬면서도 놀면서도 자면서도 깨어있어야 하는 데 그 깨어있는 방편 중에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염불입니다. 일찍이 원효스님도 나무아미타불을 염하는 것으로 대중포교의 핵심으로 삼지 않았습니까?

염불도 오로지 한 마음으로 간절하고도 꾸준한 신심으로 해나가면 삼독심을 제거하고 업장을 소멸할 뿐 아니라 불보살님의 부사의한 가피력을 입어서 마음공부에도 날개를 달게 됩니다.

<무량수경>의 사구게송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壽命甚難得 수명심난득
佛世亦難値 불세역난치
人有信慧難 인유신혜난
若聞精進求 약문정진구" 라

"오래 살기가 심히 어렵고,
부처님 만나 뵙기 더욱 어려우며
믿음과 지혜를 갖추기도 어려우니
아미타불 극락법문을 들었으면 부지런히 염불하라."
하셨습니다.

염불을 할 때는 반드시 이 사바세계를 벗어나서 아미타부처님과 관세음 대세지보살님이 계시는 극락에 태어나 다시는 물러섬이 없이 윤회하지 않겠다고 확고하게 발원을 하고 간절하게 염불을 해야 합니다. 앉아서나, 일을 할 때나 늘 일심으로 염불을 하되 즐거운 마음으로 하십시오. 부처님을 내 가슴에 모시고 있다는 환희심으로 하십시오. 정말 신나는 일이 아닙니까.

이 "나무아미타불" 일구도 천지만물에 공양 올리는 일입니다. 나는 박복해서 아무 공덕도 닦지 못했다고 말하지 말고 "나무아미타불"만 부지런히 염불해나가면 탐진치 삼독도 나를 침범하지 못할 뿐아니라 참회하는 마음과 계율을 수지하려는 착한 마음을 잃지 않게 됩니다.

세속에도 비슷한 사람끼리 모이게 되듯이 이런 행을 부지런히 닦아 평소 몸에 익혀두어야 나중에 청정한 행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극락에 나게 되는 것입니다.

옛날 경남 진주에 송보살이란 분이 사셨습니다. 그 분은 거의 구십이나 살다가 돌아가셨는데 그 집이 가난한 살림이라 절에 불공이 있으면 와서 거들어 주고 떡 부수러기나 얻어다 아이들 먹이는 이런 형편이었습니다. 그렇게 가난하게 살면서도 염불을 자나깨나 하고 있는 그런 보살이었습니다.

이 송보살이 자기가 죽기 나흘 전에 진주 신도 다 찾아보면서 「내가 나흘 뒤 아무 일 저녁을 먹고서 어둑해질 때 가겠으니 부디 염불 잘 하십시오. 나는 먼저 극락세계 가니까 같이 거기 가서 만납시다.」 이런 인사를 하고 다니는데, 사람들은 아마 나이가 하도 많은 노인이라 망령이 들어서 정신이 좀 이상해진 것 같다고 모두 곧이 듣지를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날 아침 먹고 나서 손자고 누구고 식구들을 아무데도 가지 못하게 하고는 불러 앉혀 놓더니 「내가 오늘 저녁때 해질 무렵에 간다. 너희들은 부디 딴 짓 하지 마라, 극락도 있는 거고 ,지옥도 있는 줄 알고 또 사람이 부처가 되는 법이 있으니 잘 명심하고 신심으로 살아야 한다.」고 당부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오후가 되니까 가서 물 데워 오라고 해서 목욕을 하고 그리고 새옷으로 갈아 입고는 「너희들 밥 먹고 나서 아무데도 가지 마라. 저녁 일찍 해 먹으라」고 다시 당부하였습니다. 그래서 식구들은 할머니가 뭐 정신이 돌았거나 망령이 든 것 같지도 않게 태연하고 엄숙하니까 행여나 싶어서 식구들이 모두 시키는 대로 저녁 일찍 해먹고 모두 아이들도 못나가게 하고 그랬는데 어두워지기 시작하니 요를 펴라고 해서 요를 펴니까 요 위에 앉아서 또 얘기를 하였습니다.

「이 세상은 다 무상(無常)하다. 여기는 고해(苦海)고 불붙은 집이니 아예 방심하지 말고 너희들 일 좀 해야지 만날 육체 , 몸뚱이 그렇게 가꾸어 줘 봐야 갈 때는 헛수고했다고 인사도 안하고 나를 배반하고 가는 놈이다. 몸뚱이라는 건 그런 무정한 놈이니 그 놈만 위해서 그렇게 살지 말아라. 나도 평생에 염불해서 이런 좋은 수가 있지 않느냐.

구십장수(九十長壽)도 하고 병 안 앓고, 꼬부라지지도 않고, 그리고 가는 날짜 알고, 내가 지금 말만 떨어지면 간다 . 곧 갈 시간이 되었어. 이러니 너희들도 이랬으면 좀 좋겠느냐? 두달이고 일년이고 드러누워 똥을 받아 내고 하면 그 무슨 꼴이냐. 너희들도 벌어먹을 것도 못 벌어먹고 모자간에 서로 정도 떨어지고 얼마나 나쁘냐. 부디 신심으로 염불도 하고 부디 그렇게 해라.」

이렇게 말한 뒤 살며시 눕더니 사르르 잠든 것처럼 가 버렸는데 그리고 얼마 있다가 그만 그 집에서 굉장히 좋은 향내가 나고 또 조금 있으니 서쪽을 향해서 환히 서기방광을 해서 소방대가 불났다고 동원이 되기까지 했습니다.

불교 신도들이 이 소문을 듣고 "송보살이 예언한 대로 돌아갔다. 열반을 했다." 면서 진주사람 수천 명이 몰려와서 시신에 대해서도 부처님같이 생각하고 무수배례(無數拜禮)하고 마당이고, 길이고, 뜰이고 신도들이 꽉차게 모여 가지고 절도 하고, 돈도 내어서 장례를 아주 굉장하게 지냈는데 화장 후에 사리가 나와서 나중에 연화사에 사리탑을 모셨다고 합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노보살이지만 오로지 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불러 일심이 되니까 대지혜가 열리게 되어 왕생의 인연을 짓게 된 것입니다. <화엄경>에 "믿음(信)은 도(道)를 이루는 근본 공덕의 어머니"라 했습니다. 진주 송보살처럼 간절하고 정성스런 믿음이 없으면 한 치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간절한 믿음에 의지해서 염불도 하고 참선도 하십시오.

불자여러분! 부처와 보살은 원력으로 태어나고, 중생은 업력으로 태어난다고 했습니다. 우리들은 이미 업력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으로 부처님의 법을 만났고, 또 윤회하지 않는 광명의 길을 알게 되었으니 이제는 원력으로 태어날 수 있는 방편을 행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참회하고 지계하며 염불함은 원력으로 태어나는 성인의 길입니다. 이 길은 태어나 죽고, 죽어서 태어나는 모태의 고통을 벗어나는 길이요, 윤회의 사슬을 끊는 지혜의 길입니다.

이 길은 이미 석가모니부처님이 밝혀놓으신 밝은 등불로 비추어져 환합니다. 누구나 이 길로 들어서기만 하면 됩니다. 믿고, 발원하고, 행하기만 하면 다시는 두려워하거나 슬픔에 젖을 일도 없습니다. 참회하고 부처님 말씀대로 살며 "나무아미타불" 염불만 하면 그만이라는데 이보다 더 쉬운 법이 어디 있습니까?

오래 살아도 백년세월이고 그 중에 내 뜻대로 사는 세월은 또 얼마입니까? 잠자는 세월과 남의 뜻에 이끌려 살아야하는 어린시절, 노년을 빼면 삼십년도 되지 못하는 게 사람의 삶입니다. 그런데 닦지 않고 어찌 허송세월 다 보내고 또다시 고통의 육도를 전전하는 나그네로 살겠습니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불교에서 사바세계라 하지요? 이 사바세계란 말은 얽히고 설킨 인연들을 참고 견디며 살아가는 세상이란 뜻입니다. 부디 세상살이가 어렵더라도 참고 견디며 인욕보살로 사십시오.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을 보십시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비추는 그 태양의 자비행이 없으면 천지만물은 살지 못합니다. 또 공기가 없으면 어떻게 됩니까? 다 죽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침해와 공기처럼 이 세상 모든 만물은 하나같이 나에게 공양을 올리고 있습니다. 모두가 나에게 올리는 이 소중한 공양처럼 만물의 영장이라는 우리도 공양 올리는 거룩한 마음으로 살아갑시다.

처처에 나무아미타불이요
처처에 환희 광명이 가득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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