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허 스님이 천장사에 계실 때 일화입니다. 어느 여름날 밤에 만공 스님이 큰 방에 볼 일이 있어서 경허 스님이 누워 계시는 그 앞으로 불을 들고 지나다가 얼떨결에 경허 스님을 보니,스님의 배 위에 시꺼먼 뱀 한 마리가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만공 스님은 깜짝 놀라서 "스님!이게 뭡니까?"하니. 경허 스님이 "가만히 두어라.내 배 위에서 실컷 놀다 가게" 하고는 놀라지도 쫓지도 않고 그대로 태연히 누워 계셨습니다. 얼마 후 경허 스님께서 법문을 하시면서 이런 데에 마음이 조금도 동요됨이 없이 공부에 정진해 가야 한다고 하셨답니다. 이와 유사한 이야기로 공자님이 어느 날 제자들과 광나라로 향하다가 광나라 군사들로부터 나쁜 무리로 오해를 받고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하게 되자 제자들이 모두 당황함에도 태연하였습니다. 제자들이 스승인 공자에게 그 연유를 묻자 공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엔 여러 가지 용기가 있다.물 속에세 상어를 겁내지 않는것은 어부의 용기이고,산 중에서 호랑이를 겁내지 않는 건 사냥꾼의 용기이다.또한 전쟁터에서 창칼을 겁내지 않는 건 장군의 용기이다.성인의 용기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두려워 하지 않고 모든 걸 하늘에 맡기는 것이다.그렇게 때문에 나는 이처럼 태연할 수 있는 것이다." 얼핏 보면 경허 스님의 경지나 공자의 경계가 비슷한 듯 보입니다. 그러나 공자의 용기는 두려움을 전제로 하는 상대적인 경계이지만 경허 스님의 경지는 이미 배 위에서 놀고 있는 뱀과 경허 스님 모두 둘이 아님에 따라 거기에는 두려움의 존재도 두려워 하는 존재도 성립될 수 없는 경계인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상대적인 경곌를 평등,무차별한 경계에서 바라봄에 따라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내는 온갖 번뇌를 한꺼번에 타파하는 절대적인 진리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