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수경사 사태에는 미인가 보육시설의 열악한 환경과 비전문적인 운영 등 구조적인 문제가 숨어있습니다.
당초 여승 혼자서 그런 절 안에서 13명의 영아를 키운 것 자체가 맞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그 여승이 자신의 능력을 헤아리지 못한 채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욕심낸 데서 사태가 점점 악화된 것으로 봅니다.
그 여승의 욕심으로 아기들이 소홀하게 방치됐거나, 혹은 보다 쾌적한 환경인 공공보육시설에서 양육되는 기회를 갖지 못한 부분도 있습니다.
그 여승은 이런 대목에서 책임져야 할 몫이 무겁습니다.
다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었던 것은, 그렇다고 해서 그 여승이 그렇게 일방적으로 집단여론에 의해 지탄받고 매도돼야 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방송의 선정적인 장면을 보고나면 그 여승은 악의 화신처럼 비쳤을지도 모릅니다. 절대선의 기준을 들이대면 그 여승은 결코 이 세상에서 용납될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인간(성직자를 포함해)의 절대순수성을 믿지 않는 쪽입니다. 어느 인간도 그 내면에는 욕망과 어둠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승의 행위에 대해 분노하게 된 것은, 당초 그를 100%의 선행으로 미화한 언론에 책임이 있습니다. 현실에서 100%선행은 거의 없습니다. 조금씩 때묻어있더라도, 60%쯤의 선행도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미담 보도를 할 때 우리의 관행적인 문제점은 선행을 100% 순도로만 보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100%에 맞춰서 스토리를 엮어갑니다. 세상 현실에서의 선행은 결코 그렇지가 않습니다.
양육방식과 아동학대에 관한 해석 부분은 이미 칼럼에서 썼던 것이라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앞서 언급한 대로 이는 열악한 시설과 환경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방송은 이를 단순히 승려 개인의 악행으로 몰아가는 것은 사려깊지 못한 태도라고 봅니다.
더욱이 방송에는 이런 대목에서 여승의 반론이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이는 보도의 공정성에 관한 것입니다.
방송에서는 여승의 나쁜 이미지를 각인시키기 위해 그 여승이 노승과 마치 동거한 것처럼 암시하는 발언을 했는데, 이는 설사 사실로 확인됐다 하더라도 명예훼손에 해당됩니다.
방송 보도에서 삽입된 "영아 입양 대가로 1600만원(화장실 개조비용)을 받았다"는 내용은 경찰 조사에서 아닌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 당사자는 "아이를 키우는 절을 도와주고 싶었지 여승이 아이를 데려가는 조건으로 돈을 요구한 적은 결코 없었다"고 진술했습니다.
또 16억원, 주차장 운운하는 대목은 잠입취재에 의한 유도질문에서 나온 것입니다. 방송사와 아동학대예방센터, 일부 자원봉사자의 공조로 잠입취재가 이뤄졌습니다. 한 자원봉사자에게 몰래카메라를 주고 들여보낸 것입니다. 그렇게 한 것은 어려움때문에 불가피했다고 합니다. 이런 현실적인 측면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자원봉사자의 다음과 같은 유도질문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남편과 사별을 하고 많은 재산을 물려받았습니다. 재산은 많으나 제 마음이 허전하고 쓸쓸하며 삶을 사는 보람을 못 느끼고 사는데 돈만 많으면 뭐합니까.
스님 제게는 10살 먹은 남자 아이가 있어서 그나마 허전한 마음을 잡고 살고 있습니다. 스님 여기에 와서 보니 아이들이 너무너무 예쁩니다. 아이들 중에 우리 아이와 닮은 아이가 있습니다. 제게 1명만 주세요. 그러면 스님이 해달라고 하는 ㄳ은 우엇이든 다 해드리겠습니다.
스님 무엇이 필요합니까. 자꾸 묻기에 소승이 하는 말이 중이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나는 아무 것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스님은 필요한 것이 없지만 그래도 절에 무엇이든 필요한 것이 있을테니 어려워 말고 말씀해주세요.
그래서 소승이 1층2층 주차장이나 해주세요. 공사비가 16억 정도 듭니다...>
이같은 대화 내용은 그 여승이 인터넷에 올린 글에 나와있습니다. 만약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취재의 도덕성에는 중대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방송사측은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자료를 제시해 정식으로 반박해야 할 것입니다.
위의 대화 과정을 살펴보면 누군들 넘어갈 수밖에 없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물론 세속을 떠난 여승이 여기서 욕심을 보였다는 것은 분명 비판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100%의 순도를 이야기하려는 게 아닙니다.
다만 이 사찰과 관련해 아동학대 시비는 2003년초부터 시작됐습니다. 일부 자원봉사자가 아동학대예방센터에 신고를 함으로써 비롯된 것입니다.
당시 서울동부아동학대예방센터가 그 신고를 접수했습니다. 이 센터에 따르면 아동학대 혐의로는 두가지 였다고 했습니다. 초등학생에게 매질을 한 것과 아기들의 귀를 잡고 흔들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동학대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바람직합니다. 그럼에도 솔직히 저는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 이 말을 듣고 내심 당혹감이 없지 않았습니다.
여하튼 2년반 동안 아동학대예방센터와 사찰 간에는 계속 갈등이 형성돼온 것 같습니다. 아동학대예방센터는 조계종과 해당 경찰서에 꾸준히 진정서를 집어넣었습니다. 하지만 조사 결과는 모두 혐의가 없는 걸로 나왔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방송과 연결됐습니다.
저는 그 여승이 깨끗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 승려에게도 변호할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즘 같은 인터넷 시대에는 집단여론은 인민재판이 되고 결국 한 개인의 존재를 말살 할 수 있습니다. 두달 전 "개똥녀" 사건에서도 본 것처럼 말입니다.
이번 사안과 관련해, 아직은 모든 것이 의혹과 주장의 단계입니다.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마당에서, 사실 관계를 따져보려는 과정을 참지 못하면 결코 성숙한 사회가 될 수 없습니다. 만의 하나 방송 보도 내용이 과장 왜곡됐다면, 그 여승의 삶은 어디서 보상받을 수 있겠습니까.
제가 당초 칼럼을 쓸 때 부담스러웠던 점은, 그전에 이 사찰을 미담으로 다룬 우리 신문의 보도를 변명하는 듯한 인상을 주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상당수의 독자들이 그렇게 느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자신이 쓴 글에 대해 다시 설명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