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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여성뉴스 칼럼1)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03-30 조회수 3368
혜총스님의 마음의 등불1

인연

세속에는 벌써 을미년 새 달력이 나오고 있다. 절에서도 이맘때면 동짓날을 준비하며 묵은해를 잘 보내고 새해를 맞을 채비를 한다. 한 해가 저무는 즈음이면 누구나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소납도 가끔 지난날을 돌아보면서 나와 마주했던 사람들을 생각하는데, 전생에 나와 인연이 얼마나 깊으면 그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 서로 만나게 되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으로 태어나 부모를 잘 만나고, 부부나 스승, 형제의 인연을 잘 만나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모른다. 설령 악연(惡緣)이라 하더라도 그 인연관계는 태어나기 전부터 이어오는 깊은 인연이기에 악연이든 선연(善緣)이든 관계를 순탄하게 잘하는 사람이 현명하다. 그래야 오는 생에는 다시 좋은 인연으로 만날 수 있다. 스님들의 일상의식집인 <석문의범>에는 인연의 소중함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일천 겁을 함께 착한 인연을 쌓아야 한 나라에 태어날 수 있고,
이천 겁을 함께한 인연으로 하루를 동행할 수 있고,
삼천 겁 인연으로 하룻밤을 같이 지내고,
사천 겁 인연으로 같은 고향에 태어나고,
오천 겁 인연으로 같은 마을에 태어나고
육천 겁 인연으로 같이 동침할 수 있고,
칠천 겁 인연으로 한집에서 같이 태어날 수 있고
팔천 겁을 함께한 인연으로 부부로 짝을 이루고,
구천 겁을 함께한 인연으로 형제로 태어나고
일만 겁을 함께한 인연으로 부모와 스승의 연을 맺는다.

1겁(一劫)이란 시간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긴 시간이다. 천 년에 한 번씩 선녀가 지상에 내려와 집채만한 바위를 하늘거리는 옷깃으로 한 번 쓸고 다시 천상으로 올라가는데, 그렇게 반복해서 그 큰 바위가 모래알 만해지는 시간을 1겁이라 한다. 1천 겁 동안 착한 일을 닦았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같은 나라에 태어나 함께 호흡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소중한 인연인가.

하물며 부부나 형제, 부모의 인연은 그 어떤 산수로도 표현할 수 없는 오랜 세월을 함께해온 인연이다. 우리는 이토록 오랜 세월을 머금은 아름다운 존재임을 한 번쯤 생각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가끔 가족을 원망하는 사람들의 하소연을 듣는다. 살면서 아이들이 속을 썩이고, 어려울 때 아무것도 물려준 것 없는 부모가 원망스럽고 초라해 보이더라도 내 소중한 자식이요, 영겁의 오랜 세월을 함께해온 나의 부모가 아닌가.

세상이, 삶이 팍팍해서 그런지 인간의 존재가치를 낮추어보는 경향이 심하다. 인간의 존재가치를 소유의 많고 적음으로 계량하거나 권력이나 지위의 높고 낮음으로 재단하기도 한다. 슬픈 일이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도 인간적인 끈끈함이 덜하고, 부부의 관계에도 믿음보다 비밀이 앞선다. 나와 너라는 벽을 만들고, 그 벽을 넘어 소통하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아무리 세태가 존재와 존재를 멀어지게 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모두 한 뿌리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마음의 문제이다. 나부터 마음에 등불을 켜고 광명의 세계로 나와야 한다. 마치 부모가 어두운 밤길에서 돌아오는 자식을 맞이하듯이 등불을 켜고 나의 문을 활짝 열고 사람을 맞이하자.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나와 얼굴을 마주하고 사는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인연임을 살펴서 등불을 켜고 그들을 맞이하자. 그래서 새해에는 내가 나서 어두운 세상을 밝혀나가자.
2014.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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