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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 최행자 이야기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05-06 조회수 3597
대흥사 최행자 이야기


조선시대 중엽 해남 대흥사에는 많은 스님들이 모여 정진을 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대흥사 산내 암자인 진불암은 선방으로 유명하여 전국에서 공부깨나 한다는 납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습니다. 결제날을 맞아 조실스님이 법어를 하고 있었습니다. 조그마한 암자의 앞마당은 스님들로 북적였습니다.

그때 마침 진불암에 창호지를 팔러 온 사람이 있었는데 매일같이 창호지를 팔러 다녔기에 사람들은 그의 성을 앞에 붙여 최창호라고 불렀습니다. 그도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다가 말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법문에 정신을 집중해 보았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스님들의 뒷모습만 마냥 보다가 세상의 시름일랑 다 잊고 사는 것 같은 스님들의 생활이 좋아보였습니다.

법회가 끝나 대중들이 모두 흩어지자 최창호는 조실스님이 계신 방문을 찾아 문을 두드렸습니다.
"큰스님. 저도 머리 깎고 중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한번 스님들처럼 살아 보고 싶습니다."
조실스님은 최창호를 바라볼 뿐 도대체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답답해진 최창호가 일어나려고 했습니다.
"스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할 수 없지요. 그만 일어나겠습니다." 그때 조실스님이 한 마디 던졌습니다.
"갈 테면 가게. 그 정도 결심도 없이 스님이 되겠다는 사람을 어떻게 받아들이겠느냐?"

최창호는 슬그머니 오기가 생겨서 일어서려다가 다시 주저앉았습니다. 어차피 바쁜 몸도 아니고 버티는 데까지 버텨 보겠다고 생각을 고쳐먹었고 저녁공양도 거른 채 그렇게 시간이 흘렀는데 다음날 진시(오전 7시에서 9시까지)를 훨씬 넘어서야 비로소 조실스님은 최창호에게 스님이 될 것을 허락했습니다.

최창호는 그날부터 물 긷고 나무하고, 밭도 가꾸고, 밥 짓고, 빨래하면서 행자들이 겪어야 할 모든 일들을 도맡아 했습니다.
그는 아무리 일이 고되어도 힘든 줄을 몰랐습니다. 그만큼 신이 났습니다. 그러나 염불만큼은 아무리 외워도 영 머리에 들어오질 않았습니다. 부엌에서 부지깽이로 부뚜막을 두드리면서도 염불을 했고 산에 나무하러 가서는 지게 발목을 두드리면서도 외웠지만 단 한 줄도 기억할 수 없었습니다.

대중들은 그런 최창호를 두고 바보라 놀렸습니다. 온갖 굴욕을 참으며 반년이 지났지만 전혀 진척이 없었습니다. 천수대비주도 외우지 못했고, 그 짧은 반야심경도 외우지 못해서 수계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무래도 절집과는 인연이 없는 모양이라 생각하고 하산을 결심했습니다. 최행자는 조실스님을 찾아 사정을 말씀드렸습니다.

"큰스님, 아무래도 저는 하산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산하여 다시 창호지 장사나 하겠습니다. 반년이 지나도록 염불 한 줄 외우지 못하는 제가 어떻게 부처님의 법을 배울 수 있겠습니까?
큰스님, 허락하여 주십시오."
마침 짚신을 삼고 있던 조실스님이 짚신을 삼던 손을 멈추고 최행자를 다정하게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인고?"
"예, 그것은 짚신입니다."
"짚신은 용케 잘도 기억하는구나."
"그것도 기억 못 하는 바보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큰스님!"
"나는 짚신도 기억할 줄 모른다. 지금 네가 말해 주어서 비로소 이것이 짚신인 줄 알았구나. 너는 짚신이라도 기억할 수 있으니 바보는 아니다. 옛날 부처님 당시에도 너와 비슷한 주리판타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부처님께 귀의하여 위대한 깨달음을 얻었단다." 조실스님은 주리판타카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조실스님의 얘기를 끝까지 다 듣고 난 최행자는 자신도 주리판타카 같은 수행자가 되기로 마음을 고쳐먹고 후원일을 도맡아 하면서 더욱 열심히 천수대비주를 지송하였습니다.

몇 해가 흐른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대중 가운데 한 사람이 조실스님 방문을 두드리며 급히 외쳤습니다.
"조실 큰스님, 최행자의 방에서 이상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습니다. 속히 나와 보십시오."
진불암의 모든 대중들이 최행자 방문 앞에 모여들었습니다.
조실스님이 대중들에게 조용히 말했습니다.
"최행자는 도를 얻었느니라. 앞으로는 바로 여러분들의 지도자가 될 것이니 각별히 공경하도록 하라."

그 다음부터 최행자는 어떤 경이든 읽기만 하면 모두 외웠으며 아무리 처음 보는 경이라 해도 막히는 데가 없었습니다. 그런 최행자를 대중들은 무척 존경했습니다. 마침내 깨달음을 얻어 인가를 받고 더욱 열심히 정진하여 대도인이 되었으니 대흥사의 중흥조 범해각안화상이 바로 그 분입니다. 그러한 연유로 대흥사에서는 스님을 "조선의 주리판타카"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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