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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부처님을 볼 것인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02-28 조회수 2774

대한불교조계종의 소의경전이자 많은 불자들이 널리 독송하는 대표적 대승경전인 <금강경>의 표준본이 발간돼 봉정법회를 가진 바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금강경>은 부처님의 경전 중에서도 참다운 지혜의 문을 여는 가르침이 핵심입니다. 그 중에서도 부처님을 보려는 사람은 상(相)을 여의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는데 우리 불자들이 그 뜻을 잘 새겨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옛날에 단하선사(丹霞 739∼824)라는 스님이 중국에 계셨는데, 선사가 낙양(洛陽)의 혜림사(慧林寺)에 머물고 있을 때였습니다. 몹시도 추운 어느 해 겨울날 하도 추워서 궁리 끝에 법당에 들어가 나무로 조성한 목불(木佛) 한 분을 부엌에 업어다 모셔놓고는 도끼로 쪼개서 불을 땠습니다. 그래놓았으니 난리가 난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뒤늦게 이 일을 알게 된 그 절 원주 스님이 달려오더니 펄쩍 뛰며 냅다 고함을 질렀습니다.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스님이 돼가지고 어떻게 부처님을 토막 내어 군불을 때고 태연히 드러누워 코를 골며 잠을 잘 수 있단 말인가?" 그러자 이 말을 들은 선사는 아무 말도 않고 부엌으로 가서 부지깽이로 다 타버린 재를 뒤적이는 겁니다.

뒤따라온 원주스님이 지금 무엇 하느냐고 다시 묻자 단하 선사가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보면 모르는가. 사리를 찾고 있는 중일세."
그러자 그 원주 스님이 단단히 화가 나서 대들었습니다.
"나무로 만든 부처님인데 무슨 놈의 사리가 있단 말이오!"
그 말에 오히려 단하 선사가 호통을 쳤습니다.
"만약 사리가 없는 부처님이라면 불을 땠다고 해서 나를 질책할 것은 또 무엇이냐! 그럼 남은 두 불상도 마저 불을 때야 하겠다."
이 일이 있은 후 오히려 원주 스님의 눈썹과 수염이 모두 빠져버리게 되었는데 '한 생각 화내는 마음이 일어나면, 백만 가지의 장애가 생긴다.'는 경전의 말씀처럼 부처님의 참모습을 설한 단하선사의 법문을 비난한 과보를 받았다고 하는데 이 목불을 태웠다는 일화는 오늘날까지 유전되어 후학들의 경책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 불자들은 부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조심조심 살펴야 합니다. <금강경-여리실견분>의 게송입니다.

"무릇 온갖 겉모양은(범소유상凡所有相)
모두가 허망한 것이니(개시허망皆是虛妄)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 알면(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바로 여래를 보리라(즉견여래卽見如來)."

진실로 상을 여읜 사람이라면 부처님존상으로 여래를 본다고 무슨 허물이 되겠습니까? 상이 상 아닌 줄만 확실히 안다면, 상을 여의고서야만 여래를 본다는 것이 오히려 허물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相)을 확실히 여의고 만물을 볼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마음이 곧 부처다(心卽是佛).'라는 말처럼 불교는 마음수행을 강조하는 종교입니다. 내 마음이 곧 부처이므로 마음을 잘 닦아서 부처님과 같은 마음을 찾도록 정진해야 합니다.

그런데 초심자들에게 이렇게 마음 도리만 강조를 하다보면 부처님께 예불이나 공양을 올리는 일이나 불전에 기도를 올리거나 염불하는 수행을 모두 미신이요, 우상숭배요, 어리석은 일이라고 폄하하는 병에 빠지게 해서 또 다른 상에 집착하게 만듭니다. 특히 불교를 좀 배워서 안다는 불자들 중에 이 병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병에 걸리면 고치기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한번 병에 들면 모든 걸 깨달은 것처럼 스님들을 우습게 알고 스님의 말조차 듣지 않으려 합니다. 부처님 전에 공양도 올리지 않을 뿐 아니라 기도나 예배도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다른 사람이 절에 가서 기도하는 것까지 비방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과연 불전에 예배도 하지 않는 이런 모습이 참으로 불법을 아는 사람입니까, 아닙니까?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우리는 그 속뜻을 잘 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
<금강경>의 말씀이나 단하천연 선사의 가르침은 모양 있고, 모양 없음을 따지는 게 아니라 그 어느 쪽에도 얽매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누구나 한결같이 마음이 뭐냐고 물어보면 이름도 없고, 상도 없고,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고, 색깔도 없는 것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죄송한 말씀이지만 없는 것만 마음이 아니라 있는 것도 마음입니다. 색깔도 있고, 냄새도 있고 모양도 있습니다. 나무로 만든 부처님도 금으로 만든 부처님도 마음입니다. 부처님 앞에 절하는 것도 마음입니다. '깨닫고 나니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모두 부처더라.'고 하신 옛 스님들의 말씀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닙니다. 있는 것도 없는 것도 마음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절에 다니는 사람이 부처님을 돌이나 쇠로 만들어 놓았다고 우상이라고 하는 것은 스스로 무식하다고 떠벌리고 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참다운 부처님을 뵈려면 한쪽에 치우치지 않아야 합니다. 부처님의 자비로운 뜻이 어디에 있는지 잘 살피고 항상 어디를 가더라도 예경하고 공양하는 불자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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