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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과 인과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12-29 조회수 3601
업(業)과 인과

불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대부분 업과 인과가 있음을 부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생각이 사회문제를 유발하고 범죄의 씨앗이 되기도 합니다. 내일은 없다는 생각, 오로지 지금 한 순간의 쾌락을 쫓아가는 삶이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석가모니부처님 당시에도 그런 사상가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숙명적으로 사람의 인생은 정해져 있어서 어쩔 수 없다는 운명론이나 내세는 생각하지 말고 마음껏 쾌락을 누리며 살라고 하는 쾌락주의로 대중들을 현혹했습니다. 부처님은 이런 생각들이 인생을 피폐하게 한다고 비판하시고, 이들의 가르침을 경계하셨습니다. 당시에 업을 의심하는 사상가들과 논쟁을 벌이는 가섭존자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업과 인과의 문제가 얼마나 주목받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한때 바라문이 가섭존자에게 말하였다.
"나는 다른 세상도 없고 다시 나는 일도 없으며 죄와 복의 갚음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섭이 물었다.
"무슨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주장하는가?"
"가섭이여, 내 친족 중에 큰 병으로 시달리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날 때 나는 그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벗이여! 어떤 사문들은 십악업을 행하면 죽어서 지옥에 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을 믿을 수 없다. 그러니 그대는 살아서 10악업을 지었으니 그들의 말대로라면 지옥에 갈 것이다. 그러면 나에게 돌아와서 그 일을 말해주기 바란다.' 저는 이렇게 그에게 말했지만 그는 죽은 뒤에 나에게 돌아와서 말해주지 않았으니 반드시 뒷세상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묻겠다. 만약 극악한 도둑이 붙잡혀 사형에 처할 지경에 놓였다고 하자. 그때 그 도둑이 형리에게 '나를 잠시 풀어다오. 고향에 가서 인사하고 오겠소'라고 말한다면 그 형리가 도둑을 풀어주겠는가?"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이다. 너의 친척은 10악업을 갖추어서 지금 틀림없이 지옥에 있을 것이다. 지옥의 귀신은 조금도 자비심이나 연민이 없으며, 죽음과 삶은 세상을 달리하고 있다. 그런데 악업중생이 지옥의 귀신에게 '나를 잠깐만 놓아주시오. 세간에 돌아가서 친척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오겠소'라고 말한다면 풀어주겠는가?"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이치로도 알 수 있겠는데 어찌하여 스스로 어리석은 생각을 하여 내세도 없고 죄의 갚음도 없다고 주장하는가!" 《장아함경》

부처님과 부처님의 제자들이 말씀하신 인과법칙은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따른다는 것입니다. 여름날 허허벌판 한가운데서 쏟아지는 소낙비를 피할 수 없는 것처럼 이 세상에서 착한 일에는 좋은 결과가, 악한 일에는 나쁜 결과가 반드시 온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를 낳는 근본행동을 업(業)이라 합니다.
업은 '의도를 가진 행동'입니다. 업에는 몸으로 짓는 신업(身業), 말로 짓는 구업(口業), 마음으로 짓는 의업(意業) - 삼업(三業)이 있습니다. 부처님은 절대자의 섭리나 정해진 운명을 부정하시면서 모든 결과는 인간의 의지와 행동에 따라 이루어지므로 운명은 개척할 수 있고, 삶의 결과는 바로 자신의 책임이라 하셨습니다. 업은 불교의 윤리관을 결정하는 기초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불교가 오늘날 우리 사회의 질서를 세울 수 있는 주체적인 종교로서 그 어느 종교보다 합리적인 종교임을 인정받는 것도 이 업과 인과의 바탕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심지어 자신의 의지가 전혀 개입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출신배경이나 부유하고 천빈한 삶의 조건조차도 사실은 자신의 업에 따른 과보라고 봅니다. 그렇다고 업이 결코 운명론은 아닙니다. 우리는 과거의 업에 구속될 수도 있지만, 그것을 개척하는 강력한 원력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굳센 의도를 기니고 금강 같은 원력을 실행한다면 나의 업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먼저 묵은 습관을 바꾸어야 합니다. 오랜 세월 동안 나를 미혹한 세계로 몰아넣은 습관을 바꾸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인생이 바뀌는 것입니다. 자기의 습은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시기하고 질투하는 습, 잘난 체 하는 습, 화를 잘 내는 습, 함부로 살생하는 습, 거짓말하는 습 등등을 바꾸어 나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고통스러운 과보를 낳는 악업의 원인은 무엇인가? ' 이것이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입니다. 그것은 바로 미혹(迷惑)이 원인입니다. 번뇌에 물들어 진리에 어둡고 마음이 흐려져 악업을 짓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과보를 받습니다. 반대로 진리와 깨달음을 지향하는 마음, 보리심(菩提心)은 선업을 낳고, 그 결과로 착한 과보를 받습니다.

스님들의 수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생이나 과거에 길든 나쁜 습성과 잘못된 행동을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참회하고 바르게 수행하면 깨달음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소납이 늘 참회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몸과 말과 뜻으로 짓는 삼업(三業)의 과보는 매우 엄정해서 한 치의 오차도 없습니다. 절대로 빠져나갈 구멍이 없습니다. 어떤 절대자의 힘으로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지은 대로 받아야만 합니다. 이 얼마나 공정하고 공평무사합니까? 이것이 인과(因果)의 법칙입니다. 악업을 많이 지을수록 자신의 삶이 고통스러워지고 선업을 쌓을수록 삶은 자유로워 장애가 없어지는 도리를 말합니다. 모두가 나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것이지요.

봄에 곡식을 심으면 가을에 익지 않으려 해도 결국 익지 않을 수 없으며, 과일열매에 열매가 맺으면 떨어지지 않으려 해도 결국 떨어지며, 사람이 술을 마시면 취하지 않으려 해도 취하지 않을 수 없으며, 모든 뿌리를 심으면 싹트지 않으려 해도 결국 싹이 트며, 사람이 독을 먹으면 죽지 않으려 해도 마침내 죽게 되며, 사람이 이별할 근본을 심으면 이별하지 않으려고 해도 이별하게 되며, 사람이 뒷간에 들어가면 냄새를 맡지 않으려 해도 마침내 맡게 되며, 늙고 병들고 죽을 인연을 심으면 이 환난을 면하고자 하여도 마침내 면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불가득경》

그런데 사람들은 선한 일을 했는데 왜 당장 좋은 일이 생기지 않는지, 누가 봐도 씻을 수 없는 악한 일을 한 사람이 왜 당장 벌을 받지 않고 오히려 잘 살아가는지 의문을 갖기도 합니다. 그것은 좋은 원인이나 악한 원인을 심었지만 조건이 무르익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씨가 땅에 떨어져 가지를 뻗고 꽃을 피우고 나서 열매를 맺듯이 업의 결과가 금방 나타날 수도 있지만 조건에 따라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三世)에 걸쳐 나타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악한 열매가 맺기 전에 악한 자도 복 받는다. 그러나 악한 열매가 익었을 때 악한 자는 재앙을 입는다. 선한 열매가 맺기 전에는 선한 이도 이따금 화를 만난다. 그러나 선의 열매가 익었을 때 선한 사람은 복을 받는다." -법구경, 악행품

따라서 불자는 인과와 업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고 사유하면서 스스로 인과에 대해 두려워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업과 인과가 우리의 인생을 좌우함을 매일매일 새기고 또 새기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붓다차리타>에 보면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실 때 명상에 들어 이렇게 생각하셨다 합니다.

"즐거움을 위해서 악을 행했으나 그것은 모두 괴로움의 원인이니 어떤 즐거움이 있겠는가. 그릇된 행위는 고통의 원인이니 들떠 소란스럽게 울부짖으며 그 결과를 받게 된다. 만일 악한 짓을 한 사람이 그 업의 결과를 볼 수 있다면 무서움에 떨면서 피를 토할 것이다."

옛날에 어떤 비구가 가사를 물들이고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이 그것을 송아지 고기인 줄 잘못 알아서, 급기야 그 비구가 송아지를 도둑질했다고 고발했습니다. 그 비구는 영문도 모른 채로 감옥에서 6개월간을 보냈습니다. 이는 전생에 그가 송아지를 잃어버렸을 때, 어느 수행자가 도둑질한 것으로 오인하여 왕에게 고해바침으로써 그 수행자를 감옥에서 6일간 지내게 한 것에 대한 과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인과이야기는 수없이 많은데 이것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의 하나입니다. 나 자신도 지금 이 순간에 업에 따른 인과의 구속을 받고 있습니다.

인과는 반드시 존재한다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이 믿음은 나를 미혹의 세계에서 광명의 세계로 인도합니다. 윤회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길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은 이미 오랜 영겁의 세월 동안 쌓여진 무수한 업들의 소산입니다. 그 업들을 겸허히 받아들이되 다시는 나쁜 업을 짓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업은 업을 확대해서 재생산합니다. 계속 늘어납니다. 술을 마시지 말라는 계율을 어긴 업 때문에 남의 여자를 범하기도 하고, 살생의 업을 짓기도 하고, 도둑질을 하기도 합니다. 기하급수적으로 업의 몸뚱이는 점점 커져 갑니다. 그러므로 작은 업을 짓지 않는 생활이 중요합니다.
사람들 중에는 다른 사람의 생긴 모습이나 목소리를 입에 올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 사람 목소리는 꼭 고양이 목소리 같다는 둥, 저 사람 생긴 꼴이 꼭 뱀 같다는 둥 사람의 외모를 보고 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소하게 보이는 구업(口業)도 나중에 큰 과보로 다가오게 됩니다. 
옛날에 어떤 스님이 다른 사람에게, "네 목소리는 개들이 짖는 것 같다." "개구리들이 우는 것 같다." "원숭이 소리처럼 들린다." 하고 욕을 해대었는데 그 과보로, 그 동물들과 비슷한 목소리를 갖고 각각 오백생씩 태어난 일화도 있습니다.
이렇게 농담 삼아서 한 말이 업이 되어 다음 생에 돌이킬 수 없는 과보를 나에게 안겨준다는 것이 업과 인과의 법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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